민담에서 발견되는 전형적인 인물형을 탐구하는 인문교양서이다. 지은이 신동흔은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설화 연구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건국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이다.
1장 새로 열리는 민담의 시대, 왜 민담인가?
민담은 인류의 삶을 적셔온 영원히 타당한 형식이다. 민담이 펼쳐내는 상상은 현실보다 꿈의 논리를 따른다. 비현실적인 요소로 가득하며, 예상을 뛰어넘는 비약과 반전이 수시로 펼쳐진다.
월트디즈니의 콘텐츠에는 민담을 원작으로 만들어진 애니메이션 작품이 수두룩하다. 백설공주, 신데렐라, 잠자는 숲속의 미녀, 알라딘, 미녀와 야수, 라푼젤 등의 원전이 민담이다. 디즈니는 민담을 소재로 채택하는데 그치지 않고 캐릭터 설정과 스토리텔링에서 민담의 방식을 적극 활용한다.
저자는 21세기를 민담의 시대로 보고, 민담형 인간의 대표적인 인물로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의 주인공 알란, EBS 연습생 펭수, 아기공룡 둘리를 들고 있다. 펭수를 통해 본 민담형 인간의 특징은 평면적 일관성과 거침없는 행동성, 당당한 존재감과 낙관적인 돌파력이다.
2장 소설형 인간과 민담형 인간, 그대 선 곳은?
저자는 그림형제 민담 ‘영리한 엘제’의 ‘엘제’와 ‘거지할멈’의 주인공 ‘소년’처럼 생각은 많으나 행동하지 못하는 사람, 고민하다가 인생을 낭비하는 사람들을 ‘소설형 인간’이라고 부른다. 반면에 ‘구복여행’의 주인공 ‘석숭’과 ‘구렁덩덩 신선비’의 ‘셋째딸’처럼 생각할 때 생각하고 행동할 때 행동하는 사람들을 ‘민담형 인간’이라고 부른다. 자기 자신에 대한 믿음, 소신에 의한 거침없는 행동력이 민담형 인간의 핵심 자질이다.
3장 민담형 인간의 꽃, 트릭스터 탐구
민간형 인간을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캐릭터가 트릭스터(trickster)다. 신화의 특징적 캐릭터가 ‘영웅’이고 소설의 두드러진 캐릭터가 ‘문제적 개인’이라면 민담을 대변하는 캐릭터는 바로 ‘트릭스터’라고 할 수 있다.
다음(Daum) 영어사전에서는 트릭스터(trickster)의 뜻으로 ‘1. 사기꾼, 2. (민화·신화에 나오는) 장난꾸러기 요정, 트릭스터, 3. 마술사, 4. 창조적이면서 파괴적인 성격을 가진 양의적(兩意的) 존재, 5. 책략가’라고 풀이하고 있다.
트릭스터는 ‘재기발랄한 자기중심의 장난꾼 내기 사기꾼 캐릭터’로서 ‘상식을 깨는 거침없는 행동력’이 트릭스터의 기본 특성이다. ‘제 욕망을 이루기 위해 수단에 개의치 않고 거침없이 움직이는 행동파 인물’로 정의되기도 한다.
3장에서 저자는 트릭스터의 대표적인 인물로 ‘꼬마 재봉사’와 ‘정만서’, ‘장화신은 고양이’, 터키 민담의 주인공인 ‘켈올란’의 이야기를 통해 늘 거침없이 당당하고 자유롭게 온 세상과 통하는 트릭스터의 일차원적 혹은 4차원적 단순성에 대해 탐구한다,
4장 걸림 없는 자유의 삶, 그 자체로 성공이라
신화나 전설과는 달리 민담에서 거인이 주인공이 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거인은 대개 주인공의 상대역일 따름이다. 거대한 대상 앞에 선 작고 가벼운 존재, 이것이 민담형 인간의 전형적인 이미지다. 그 이미지가 인상적으로 극화된 사례로 ‘엄지 만한 아이’들을 들 수 있다. ‘엄지동자’, ‘엄지둥이’, ‘주먹이’, ‘대나무통 속 소녀 새끼손가락’은 세상 속에서 이리저리 부딪치면서 힘든 일도 겪고 그것을 애써 헤쳐나간다. 그렇게 힘들여 찾아내고 펼쳐내는 자유와 행복이 진정한 가치를 지닌다.
‘잭과 콩나무’의 주인공 ‘잭’과 영리한 소녀 ‘몰리 후피’는 거인과 싸워서 자기가 원하는 것을 얻거나 과업을 완수한다. 잭과 몰리는 아무도 한 적이 없는 특별한 일을 행하였고, 그를 통해 세상에 없던 새로운 길을 만들어낸다.
저자는 4장에서 천하약골 ‘보리밥 장군’과 그림형제 민담 속의 ‘얼간이’, 평안도 ‘반편이’와 ‘밀양 새댁’, 터키 민담 ‘황금 나이팅게일’의 ‘막내 왕자’를 민담형 인간으로 소개한다.
5장 민담형 인간의 유쾌한 동행, 나도야 간다!
민담의 주인공은 세상을 혼자서 움직여간다. 스스로 결정하고 스스로 행하며 스스로 감당한다. 그렇게 보면 그들은 꽤나 외로운 존재일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혼자라고 하는 사실을 질곡이 아닌 자유로 삼아 움직이는 것이 민담형 인간의 방식이다.
그러나 혼자가 아니라 몇 명이 동행하면서 서로 도우며 살아가는 이야기도 많다. 우리나라 민담 ‘특재 있는 의형제’, 그림 형제 민담 ‘여섯이서 온 세상을 헤쳐간 이야기’는 민담형 인간의 동행이 그냥 제멋대로의 무모한 나아감이 아니라 일련의 체계를 가지고 있으며, 그 체계가 각 개인의 캐릭터를 마음껏 살릴 수 있는 형태의 자유롭고 효율적인 체계라는 것을 보여준다.
동행 중에는 무엇 하나 번듯하게 내밀 것 없는 퇴물들의 동행에 대한 이야기도 있다. ‘브레맨의 음악대’는 영락없는 루저(loser)들이 팀을 이루고 엉뚱한 도전을 펼쳐 인생 역전의 성공을 이루어내는 모험담이다. 그들이 가진 것이 있다면 한 가지는 ‘오래 눌러두었던 꿈’을 이루어보겠다는 열정이었고, 또 한 가지는 남의 이목 따위 개의치 않고 그것을 실행으로 옮긴 행동력이었다.
나는 이 책에서 ‘소설형 인간’과 ‘민담형 인간’의 구분이 너무 주관적이라고 생각했다. 저자가 민담을 연구하는 학자라서 그런지 ‘민담형 인간’은 좋은 인성적 특징을 다 가졌고, 소설형 인간은 그 반대라고 하는 것은 너무 단순하다. 민담형 인간에 촛점을 맞추고, 이야기의 내용보다는 주인공의 생각과 행동을 분석하고 설명하는데 더 많은 지면을 소비하는 것도 민담형 인간에 대한 옹호 내지 변명으로 보여서 공감하기 어려웠다.
책을 읽으면서 우리나라 민담에 대해 너무 모르는 것이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림 형제 동화집’ 등에서 읽은 동화들이 민담이라는 것과, 우리나라 민담보다 독일 민담을 더 많이 알고 있다는 것이 부끄러웠다. 우리나라 민담과 신화, 설화, 특히 구비설화를 찾아 많이 읽어야겠다고 생각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