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J씨의 직업

kdy820 2022. 3. 27. 17:18

내가 다니는 목욕탕의 J씨는 네 가지 직업에 종사하고 있다. 우선 건물 3층에 위치한 남탕 관리를 한다(회사원). 손님이 제시하는 목욕권을 수거하고, 목욕에 필요한 물품을 판매한다. 때수건, 비누, 치약, 칫솔과 목욕 후에 찾는 우유, 음료수 등이다. 욕조에 더운물을 공급하고 욕탕 안팎을 청소하고, 목욕탕에 비치된 목욕용품과 재활용 쓰레기통, 수건 수거함 등도 관리한다.

두 번째 직업은 이용소 사장이다(자영업). 관리대 옆에 따로 이발하는 공간이 있다. 벽면 위쪽에 이용사면허증을 게시하였고, 이용 도구를 갖추었다. 일반 이용소와 다른 것은 의자가 하나뿐이라는 점이다.

세 번째 직업은 세신사, 즉 때밀이다(보건위생직). 때를 미는 공간에서 목욕객의 때를 밀어주고, 어깨 마사지, 전신 마시지를 한다. 초등학생에게는 할인 혜택도 준다.

마지막 직업은 가수 겸 작사가, 작곡가이다(예술가). 이용 도구대 위에 각종 축제 또는 가요대회에서 수상한 대상, 금상 등 트로피가 수두룩하다. 가수로 봉사활동 해서 받은 국회의원 감사장도 있다. 새로 작곡한 노래를 연습하는 경우가 많아서 최신곡을 무료로 들을 수 있다.

원래 이용소 사장이 따로 있었는데, J씨가 오면서부터 남탕의 모든 일을 혼자 한다. J씨를 처음 봤을 때는 조직폭력배가 아닌가 하고 의심했다. 노란색으로 염색한 깎두기머리, 짧고 튼튼한 목, 돔베기 가운데 토막 같은 몸통, 내 팔다리의 두 배는 됨직한 사지를 갖추었다. 전체적으로 반듯한 직육면체를 연상시키고, 탤런트 고창석의 분위기가 난다. 나이는 나보다 서너 살 적은 것 같았다.

3년째 지속되는 코로나19로 목욕탕 손님이 엄청나게 줄었다. 최근에 목욕탕에 갔을 때, J씨는 ‘손님도 없고 조용할 때 잘 왔다’면서, 금방 머리를 깎고, 염색해주었다, 15분 동안 휴게실에서 기다리다가 욕탕으로 들어갔는데, 욕조에 있는 사람은 두 명뿐이었다. 목욕을 마칠 때까지 5명 정도 들어왔다. J씨에게 때를 미는 사람은 없었다.

몸을 닦으러 나왔다. 관리대에 앉은 J씨가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야, 가수라서 정말 노래 잘하네! 신곡인가요?”라고 했더니, ‘봄비 속의 여자’라고 하면서 백 번 정도 연습해서 녹음하러 간다고 했다. ‘돈도 많이 벌지 못하는 주제에 팔리지 않는 노래를 자꾸 만든다.’라며 부인에게 구박받을 때가 많다고 했다.

직업을 나눌 때 주업과 부업으로 나누기도 한다. 조 씨의 주업은 목욕탕 관리원이고, 이용사, 세신사, 가수는 부업인 것 같다. 그런데 J씨 스스로는 주업이 가수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자동차 접촉사고가 났을 때 상대방에게 가수 명함을 줬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나는 J씨가 운영하는 유튜브 구독자이다. 새 노래를 발표할 때마다 영상을 보내주는데, 그렇고 그런 트로트여서 기억에 남는 곡이 없다.

나는 20대 초반에 초등학교 교사가 되어 40여 간 재직했다. 주업은 있고 부업은 없었다. 그런데 퇴직 후에는 주업인지 부업인지 모를 직업 두 가지를 가지게 됐다. 기자와 관장이다. 둘 다 무보수 봉사직이다.

기자가 되는 데는 돈이 들지 않았지만, 도서관 관장이 되는 데는 상당한 자금이 들었다. 앞으로의 전망도, 기자를 하는 데는 돈이 들지 않겠지만, 관장직을 계속 유지하는 데는 일정한 돈이 꾸준히 들 것 같다. 그래도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여생을 보낼 수 있어서 두 가지 직업을 잘 선택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