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노화성 난청

kdy820 2022. 4. 10. 18:51

포항 D초등학교에 4일간 기간제 강사로 근무하러 갔다. 첫째 날 퇴근 후에 강사로 임명되기 위해 필요한 채용신체검사를 하러 학교 부근 S기독병원에 갔다. 종합검진센터에서 키와 몸무게를 재고, 시력검사를 하고 청력검사를 하러 갔다. 간호사가 이어폰에서 ‘삐’ 소리가 들리는 쪽의 손을 들라고 했다. 오른쪽 손은 몇 번 들지 않고 왼쪽 손만 여러 번 들었다. 검사가 끝난 후에 오른쪽 귀가 많이 어두운 것 같다고 했다. 다음 날 검사결과지를 받으러 갔다. 왼쪽과 오른쪽 청력을 나타내는 데시벨에 차이가 많이 났다.

퇴근 후에 거실에서 TV를 보면서 청력 테스트를 했다. 음량을 1로 했을 때, 왼쪽 귀에는 잘 들렸지만, 오른쪽 귀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인터넷에서 찾아보니 청력이 감퇴되면 회복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이대로 귀가 멀면 어떡하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온몸에 힘이 빠졌다.

20대 후반과 30대 초반에 술을 마시고 나면 귀가 간지러워 성냥개비나 면봉 등으로 자주 후볐다. 그러다가 귀가 붓고 탈이 나서 이비인후과에서 치료받기를 여러 번 되풀이했다. 한 번은 오른쪽 귀에서 물이 계속 나왔다. 북비산네거리에 있는 이비인후과 의사가 귓속을 살피더니 고막이 찢어졌다고 하면서 얼마 동안 관찰해보자고 했다. 3주 가량 지난 후에 의사가 오른쪽 귀를 보더니 찢어진 고막이 다시 붙었다고 하면서 이런 경우는 의사 생활에 처음이라고 했다. 그 후에는 귀가 아프지 않았다.

아버지는 일흔이 가까워지면서 왼쪽 귀가 잘 들리지 않는다고 했다. 청력 검사를 하고 왼쪽 귀에 보청기를 해드렸다. 보청기를 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과수원에서 일하다가 보청기를 잃어버렸는데, 아무리 찾아도 없다고 했다. 보청기를 다시 해드리려고 했으나, 또 잃어버릴 것 같다면서 하지 않겠다고 했다. 그 후에 귀가 점점 더 어두워져서 TV 음량을 자꾸 높이다가 나중에는 소리가 들리지 않아 화면과 글자만 본다고 하셨다. 아버지와 대화하려면 큰 소리로 말해야 했다. 아버지께 화가 나서 큰 소리를 내는 것 같아 무척 미안하였다. 아버지는 돌아가시는 날까지 보청기를 하지 않았다.

내가 오른쪽 귀가 잘 들리지 않는다고 하자 아내는 이비인후과에 가서 치료를 받으라고 했다. 아버지를 닮아서 귀가 어두워지면 어떡하나 걱정하면서 집에서 가까운 이비인후과에 갔다. 의사가 왼쪽과 오른쪽 귀를 작고 긴 후레쉬로 비춰보더니 청력 검사를 해봐야 어느 정도로 귀가 어두운지 말할 수 있다고 했다. 간호사를 따라 청력검사실에 갔다. 간호사가 볼펜처럼 생긴 신호기를 주면서 오른쪽이건 왼쪽이건 소리가 나면 무조건 버튼을 누르라고 했다. 다음에는 간호사가 하는 말을 그대로 따라 하라고 했다. 간호사는 검사가 끝난 후에 검사지에 찍은 점을 선으로 이어서 그래프를 그렸다. 다시 진료실에 갔다. 의사가 그래프를 보면서 왼쪽보다 오른쪽이 더 심하기는 한데, 전체적으로 노화성 난청이 시작되었다고 했다. 처방은 없고 1년에 한 번씩 와서 검사를 받으라고 했다.

2015년에 UN이 나눈 사람의 연령 단계에 의하면 0세에서 17세까지는 미성년자, 18세에서 65세까지는 청년, 66세에서 79세까지는 중년, 80세에서 99세까지는 노년, 100세 이후는 장수노인이다. 나는 올해 만 65세이니 청년이다. 80세에 난청이라면 이해할 수 있겠지만 아직 청년인데 노화성 난청이라니 말이 안된다.

귀뿐만 아니라 눈도 많이 나빠졌고, 조금 걸어도 피로를 느낀다. 4일간 기간제 강사를 끝낸 후에는 저녁 먹자마자 정신없이 잠을 잤다. 마음은 청춘인데 몸은 이미 노인이다. UN의 연령 단계는 몸을 기준으로 나눈 것이 아니라 마음을 기준으로 나눈 것 같다. 마음 속으로 ‘나는 아직 청년이다.’라고 여러 번 되뇌어 본다. 귀가 밝아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