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전면허 취득기
운전면허 취득기
나는 1988년 1월부터 자동차 운전학원에 다녔다. 내가 다니던 학원은 집 가까이 있어서 좋았지만, 강의장이나 연습장 등 시설은 별로 좋지 않은 곳이었다. 30분 정도 운전연습을 하기 위해 추운 겨울에 바깥에서 줄을 서서 기다려야했다. 응시희망자가 많다보니 야간에도 불을 밝혀놓고 운전연습을 해야 그 날의 연습생들을 모두 소화할 수 있었다.
나는 1종 보통 수동 면허를 선택하고 필기는 집에서 문제집으로 공부하고 실기는 학원에서 1.4톤 트럭으로 연습하였다. 너무 많은 사람이 연습하여 고물이 다된 트럭은 방향지시 손잡이가 아예 없었고 브레이크 및 엑셀도 힘껏 밟지 않으면 말을 듣지 않았다. 외형마저 온통 찌그러진 트럭에 올라 Z, T, S코스 등 코스 연습과 등반, 돌발 등 주행 연습을 하였다. S코스에서 후진하는 것과 오르막에 일시 정지했다가 미끄러짐 없이 반크러치 상태로 출발하는 것이 무척 어려웠다.
나를 가르친 운전학원의 강사는 연습생들을 함부로 대하고, 제대로 가르쳐주지도 않으면서 잘못하면 면박을 주기 일쑤였다. 그래서 강사에게 잘 보여서 조금이라도 연습을 많이 하기 위해 담배나 박카스 등 음료수를 대접하기도 하고, 잘 가르쳐 달라고 뇌물을 주는 사람도 많았다. 강사의 입장에서 보면 빈 손으로 와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기다리다가 연습을 하고 사라지는 나 같은 놈을 친절히 대해 줄 리 만무하였다. 그야말로 구박하는 것이 눈에 보여도 꾹 참고 연습하였다. 한번은 오르막을 지나 내리막길을 내려오다가 핸들을 제대로 조작하지 못해 한쪽 앞바퀴가 길 밖으로 떨어진 적이 있었다. 그 날 강사들이 몇 명이나 몰려와서 운전 제대로 하라고 정신교육을 하였다.
1988년은 올림픽을 앞두고 운전면허 취득 붐이 한창이던 때여서 운전학원이나 시험장이 자동차 운전의 꿈에 부푼 사람들로 북적대는 때였다. 시험에 한 번 떨어지면 한 달 정도는 기다려야 다음 번 시험에 응시할 수 있었다. 나는 운전학원에 다니면서 실기시험을 세 번 치렀다. 처음에는 당황하여 Z코스에서 불합격하고, 그 다음에 S코스에서 떨어졌다. 세 번째는 코스를 모두 통과하였지만, 주행시험에서 불합격하였다. 모임에서 만난 친구들이 필기와 실기에 한꺼번에 합격한 무용담을 자랑스럽게 늘어놓을 때마다 나는 그 친구들이 부러웠다.
자동차 학원에 등록할 때는 면허를 딸 때까지 학원에서 책임지고 교육시켜 주겠다고 했다. 그러나 실기에서 세 번이나 떨어지고 다시 연습을 하러 나타난 나를 보고 강사는 기다렸다는 듯이, 당신처럼 운전을 못하는 사람은 처음 본다, 그렇게 눈치 없이 연습해서 언제 면허를 따겠느냐, 나 같으면 차라리 운전하지 않고 포기하겠다는 등 막말을 하면서 나의 면허 취득의지를 꺾기 위하여 노력하였다. 나는 봄방학이 다 지날 때까지 운전면허를 따지 못하고 그 학원을 떠났다.
6개월이 지난 여름방학 때, 다시 운전면허에 도전하였다. 시험장 가까운 학원에서 몇 시간 주행 연습을 하고, 지금은 없어진 화원운전면허시험장에서 주행 시험을 보았다. 종료지점에 들어왔을 때, 실수를 많이 한 것 같은데도 합격이라고 하였다. 그 날은 이상하게도 주행 시험에서 떨어진 사람이 거의 없었다. 그래서 나는 누군가를 봐주기 위해서 무더기로 합격시켰는데, 운좋게 내가 그 안에 들어갔다고 생각하였다. 교통안전교육 후에 면허증을 받았을 때는 정말 가슴이 뿌듯하였다.
장거리 운전 연습은 개별적으로 해야 했다. 친구들 중에서는 연습 없이 바로 차를 운전하는 경우도 있었고, 운전을 할 줄 아는 사람을 태우고 대충 지도를 받고도 능숙하게(?) 차를 몰고 다녔다. 나는 프리랜서로 활동하는 강사를 소개받아 10시간 가량 운전연습을 하였다.
면허를 따는 것보다 자동차를 구입하는 것은 더 어려웠다. 친구들 중에서는 기홍이가 제일 먼저 프레스토를 타고 다녔다. 친구들과 같이 기홍이 차를 타고 가면서 얼마나 부러워했는지 모른다. 나는 르망 최고급형을 사고 싶었지만 640만원이나 하는 차를 내 힘으로 살 엄두가 나지 않았다. 길가에 르망이 주차되어 있으면 가던 길을 멈추고 르망 주위를 돌면서 차의 겉모습을 유심히 살펴보고 세련된 디자인에 감탄하였다. 한참 후에 발길을 옮기면서도 르망이 있는 쪽으로 자꾸 뒤돌아보고는 하였다.
1989년 11월에 치과를 하는 동생이 나에게 자동차를 사주겠다면서 어떤 차를 좋아하는지 선택하라고 하였다. 나는 르망을 사고 싶었지만 동생에게 부담이 될까봐 엑셀GL이 좋다고 하였다. 11월 30일에 엑셀이 아파트로 배달되어 왔다. 아파트 주차장에 세워진 차를 보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같은 아파트에 사는 선배 교사에게 차를 한 번 운전해 달라고 하였다. 엘란트라를 운전하던 선배 교사가 나를 조수석에 앉히고 내 차를 능숙하게 운전하여 아파트 주위를 한 바퀴 돌았다. 그리고 운전하는 법을 설명해주었는데, 나는 혼자 운전해보고 싶었으나 아무래도 자신이 없었다. 장거리 연습을 더 하고 타야 할 것 같아서 커버를 씌워 두고 토요일까지 기다렸다. 그 후 내 차로 장거리 연습을 10시간 정도 더 한 후에, 가족과 함께 고향에 갈 수 있었다.
운전면허 시험 방법이 바뀌어서 요즘에는 학원에서 면허를 취득할 수 있게 되었다. 내가 면허를 취득한 후 아내와 딸과 아들이 차례로 학원에 다녔는데, 별로 힘들지 않게 면허를 취득하고, 운전도 잘 하고 다닌다. 면허를 가장 먼저 땄음에도 불구하고 가족 중에서는 아직도 내가 운전을 가장 못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