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산책

거미집

kdy820 2024. 1. 14. 07:03

 

1. 개요

2023년 추석에 개봉한 김지운 감독의 10번째 장편 영화. 제76회 칸 영화제 비경쟁부문 초청작이다. 1970년대, 다 찍은 영화 〈거미집〉의 결말을 다시 찍으면 더 좋아질 거라는 강박에 빠진 김감독이 검열 당국의 방해와 바뀐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는 배우와 제작자 등 미치기 일보 직전의 악조건 속에서 촬영을 감행하면서 벌어지는 처절하고 웃기면서도 슬픈 일들을 그리는 영화.

 

2. 줄거리

데뷔작 '불타는 사랑'으로 엄청난 성공을 거둔 김열 감독은 현재 상업성 위주인 3류 치정극만 뽑아내 영화 평론가들 사이에서 스승인 신 감독과 비교되면서 악평을 받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그는 항우울제를 다량 복용해가며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다.
그러던 어느날 김열 감독은 최근 연출작 '거미집'에 대해 생생한 꿈을 꾸게 되고, 그 장면을 타자기로 치면서 '그대로 찍으면 틀림없이 걸작이 된다. 이걸 알고도 비난이 무서워 피하면 죄악이 된다.'는 확신을 가지게 된다.
해당 꿈을 반복해서 꾸면서 걸작의 기운을 감지한 김열 감독은 이미 다 찍은 영화 '거미집'의 결말을 바꾸려 한다. 이틀만 있으면 해결될 것도 같지만 상황은 만만찮다. 세트는 이미 다음 작품 촬영을 위해 철거를 시작했고, 배우들은 이미 다른 작품 촬영에 여념이 없다.
가장 큰 문제는 검열이다. 결말을 수정한 시나리오는 신성필림의 김 부장이 애를 썼지만 문화공보부의 촬영 허가를 받지 못했다. 남편에게 버림받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여주인공 민자가 욕망을 불태우며 남편과 시부모에게 복수하는 인물로 뒤바뀐 것이 퇴폐적이라고 지적받았기 때문이다.
스스로 걸작의 기회를 포기하는 죄악을 저지르지 않기 위해 김감독은 결국 사람들을 불러모아 재촬영을 감행한다. 반대일색인 사람들 속에서 유일한 조력자는 미도. 김감독의 스승인 거장 신감독의 조카이자, 제작사 신성필림의 후계자이며, 재정 담당이다.
마침내 미도가 총대를 맨 끝에 세트를 보존하는 데 성공하고, 우여곡절 끝에 카메라는 다시 돌아가지만 모인 배우들은 삐걱거린다. 문화공보부 직원이 허가를 받지 못했음에도 영화를 촬영하는 것에 대해 항의하자 미도가 양주를 대접해 취하게 만들어 버린 후 촬영을 강행하기도 하고, 급기야 어느 배우도 빠져나가지 못하게 세트장을 자물쇠로 걸어잠그고 전화선을 싹 뽑아버린다.
사냥꾼 역할을 맡은 조연 배우 역시 김 감독과 오랫동안 합을 맞췄지만 개연성이 없는 전개라며 격노하고 급기야 모형 사냥총으로 문을 부수고 나가려는 시도를 하게 된다. 결국 이 배우 역시 미도가 술 접대를 통해 만취하게 만든 후 문화공보부 직원과 함께 난동을 부리지 못하도록 밧줄로 꽁꽁 묶고 저택 세트 2층 방에 가둬 둔다.
계속 촬영이 진행되던 중에 일본 출장을 마치고 돌아온 백회장이 세트를 부수고 들어온 후 촬영을 강행한 것에 격분하면서 문공부에서 촬영을 한다는 소식을 알고 오고 있다며 당장 취소하라고 하지만 미도와 스태프들의 강한 설득으로 결국 넘어가게 된다. 맘대로 굴러가지 않는 촬영 현장에 김 감독은 잠시 사무실에 틀어박혀 실의에 빠진다. 그때 스승이었던 신 감독의 환영이 나타나  ‘스스로를 믿는 것이 바로 재능이다’라고 열변하고는 눈앞에서 불꽃과 함께 산화한다. 환상을 본김 감독은 다시 의지를 불태워, '나를 믿어라'라는 말을 캐치프레이즈로 삼아 촬영에 복귀한다.
이후 문공부 국장이 세트장에 들어오지만 백회장의 술접대와 가짜 반공영화 대본으로 혹해 영화촬영을 승인해주고 직접 촬영을 직관하기로 한다.
한편 다방 직원에서 김 감독을 만나 유명 배우가 된 한유림은 드라마 촬영이 있음에도 김 감독과의 의리를 위해 하루만이라는 조감독의 거짓말에 속아 재촬영에 들어가지만 아무런 사전 협의도 없이 진짜 거미를 얼굴에 뿌리는 등 촬영 강도가 거세자 불만이 증폭된다. 특히 이틀이 걸릴 거란 소식에 탈주를 시도하기도 하다가 격분한 미도에게 뺨을 맞고 머리끄덩이를 잡히는 수모까지 겪고는 그동안 누적된 피로에 겹쳐 영화 거미집 촬영에 완전히 정나미가 떨어진 모습을 보인다. 리허설에서는 피 알레르기 운운하며 대놓고 태업을 할 정도.
특히, 불륜 관계였던 호세를 비롯해 영화 관계자들 앞에서 자신이 임신했으며 아이의 아버지 또한 호세가 믿고 있는 것과 달리 그가 아니란 사실을 고백하는 우여곡절을 겪으며 완전히 이탈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유림을 미워하며 그녀보다는 잘할 자신이 있다고 강변한 끝에 대역으로 들어간 미도가 엄청난 발연기를 선보이면서 유림 외에는 달리 대안이 없는 상황이 되었고, 유림 또한 정부의 높으신 분들이 현장에 납신 상황에서 잘 보이기 위해 카메라 앞에서 진심을 담은 훌륭한 연기를 선보인다.
김열은 영화의 엔딩씬을 원테이크로 담아내는 쁠랑 세깡스(Plan-séquence) 방식으로 찍겠다며 고집하고, 우여곡절 끝에 촬영에 들어간다. 롱테이크로 들어가는 만큼 합을 맞추고 세트장에 불을 붙이는 것으로 마무리 되는 순간, 2층에 조연 배우와 문공부 직원이 있다는 걸 생각해낸 미도가 김 감독에게 급하게 이 사실을 알리고 백회장까지 나서서 촬영중단을 해야한다며 간청하지만 이미 영화 촬영에 반쯤 미쳐 있는 김 감독은 아랑곳하지 않고 촬영에 몰두한다. 촬영이 끝나자마자 잽싸게 문공부 직원과 배우를 구출하고 이것을 본 문공부 국장은 경악한다.
배우들을 돌려보내고 김 감독은 감독 의자에 앉아 공허한 세트장을 바라보며 깊은 상념에 빠진다. 이후 영화 거미집의 바뀐 결말이 상영되고, 배우들과 함께 해당 영화의 상영관에 간 김 감독은 그토록 바라던 '감독으로서의 인정'인 박수갈채를 받는다. 그러나 김열의 만족스럽지 못한 표정을 끝으로 영화는 마무리된다.

<극중극 줄거리>
초기 버전에서의 이민자는 여공 출신 첩(한유림)에게 밀려나 시어머니(오여사)에게 버림받고 남편(강호세)에게 외면받아 목을 매고 죽는 한 많고 수동적인 여인상이었다.
재촬영 후에는 이민자가 경영학을 전공한 신여성 캐릭터로 바뀌었다. 공장을 운영하는 호세네 가족한테 이를 어필하지만, 보수적인 시어머니에게 언짢음만 산다. 한편 공장의 여공들에게 야학에서 음악을 가르치던 호세는 신입 여공 유림과 묘한 기류가 흐른다. 민자는 집에서 이들의 성관계 장면을 목격하고, 불륜을 눈치챈 나머지 거미를 무서워하는 유림이 거미를 발견하고 밤중에 날뛰는 모습에 크게 화를 내기도 한다.
그러나 유림이 호세의 아이만 낳고 오여사에게 버림당하자 민자는 태도를 바꾼다. 민자는 사냥꾼(김열 감독)과 함께 숲에서 목을 매어 자살하려던 유림을 구하고 복수할 작전을 짠다. 호세를 납치한 세 일당은 오여사에게 몸값을 요구하고 아내로서 집에 있던 민자가 금고 열쇠를 오여사가 목에 걸고 있었음을 확인한다.
오여사는 비서를 시켜 몸값을 지불하게 시킨 후 방에 혼수상태로 누워있는 남편(민자의 시아버지)을 바라보며 그가 지난날 여공을 겁탈하여 낳은 아이를 회상하며 후회한다. 남편(시아버지)은 그 때 겁탈 현장을 목격한 아내 오여사가 격분하여 그를 가위로 찌르는 바람에 혼수상태가 된 것이다.
시간이 지나 호세는 탈출하여 거지꼴로 집안에 겨우 도착하는데, 문이 열려있는 틈을 타서 은행에 갔다던 민자가 돌아와 호세 모자를 고발한다. 민자는 이전에 오여사가 내쫓은 시아버지의 첩이 다른 남자와의 사이에 낳은 딸이며 복수를 위해 30년간 계획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고전영화답게 뜬금없이 시아버지가 깨어나 민자와 호세가 이복남매라는 것을 실토한다.
모두가 충격에 휩싸이고, 오여사가 충동적으로 남편을 목 졸라 살해한 후 휘발유를 뿌리고 집에 불을 지르는 씬이 쁠랑세캉스(원테이크)로 연출된다. 칼싸움 끝에 호세를 쓰러트린 민자가 금두꺼비로 오여사를 가격하고 열쇠를 빼앗아 2층의 금고로 향한다. 한편 유림은 숲에서 덫에 걸려 다리를 다친 채로 뒤늦게 불타는 집에 들어와 작전대로 2층 금고로 향한다. 민자와 유림은 아직 죽지 않은 호세를 협공하여 죽이지만 민자가 막대한 재산에 눈이 멀어 유림을 공격하려다 역으로 찔려 죽는다. 최후의 생존자 유림은 금고를 열었으나 거대한 거미가 금고 속에서 튀어나와 유림의 얼굴을 덮치고, 패닉에 빠진 유림은 거미를 무서워하며 이리저리 뛰다가 그만 계단에서 발을 헛디뎌 굴러떨어져 "난... 거미가... 싫어." 라는 말을 남기고 사망한다.
이후 공장 주임이 저택에 찾아왔을 때는 거미줄에 집안 사람들 모두가 꽁꽁 묶여 천장에 매달려 있었다. 이를 보고 경악한 주임의 비명과 함께 영화는 을씨년스럽게 끝이 난다. 영화는 겉으로는 가부장적인 전통 가족질서를 옹호하지만 속으로는 성욕을 못 이기고 첩과 며느리를 부속품으로만 여기는 구질서를 비판하고, 성과 재산과 집안이라는 욕망을 이기지 못한 사람들에게 벌을 내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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