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37

우리는 왜 여행을 떠나지 못했을까?

몇 년 전에 수필대학을 수료하고, 심화 과정에서 6개월을 더 공부했다. 내가 회장인 심화반 수료생은 모두 4명이었다. 1년 후에 졸업여행을 다녀왔다. 올해 1월에 동해안에서 단합대회를 했고, 3월에는 지리산으로 여행 가기로 했다. 내가 경기도에서 기간제교사를 하게 된 것이 문제의 발단이었다. 채팅방에 2주에 한 번씩 대구에 내려간다 하고 3월 마지막 주 토요일과 4월 말 토요일 중 가능한 날 여행 가자고 제안하였다.A는 언제나 OK라고 하였고, B는 4월에 가능하다고 했다. C는 아무런 말도 없다가 3월 중순이 지나서야 “4월에 해야겠네요.”라고 했다. 4월 말 오전 10시에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4월 초순에 B의 전화를 받았다. 여행 가기로 한 날에 다른 중요한 일이 있어서 곤란하다는 것이었다. 채..

수필 2024.05.05

기억을 잡아라

일흔이 가까워지면서 내가 하는 행동과 기억력에 자신이 없을 때가 많다. 외출하면서 문을 잠그었는지, 안 잠그었는지 확실하지 않아 되돌아가서 다시 확인한다. 욕실의 수도꼭지를 제대로 잠그지 않거나, 전등불을 끄지 않고 나오는 경우도 있다. 무의식중에 하는 행동이라서 기억에 남지 않는다. 기억을 떠올리려 해도 전혀 기억나지 않는 행동이 있다. 술에 만취하여 블랙아웃된 상태에서 내가 어떻게 했는지 궁금하지만, 아무리 해도 알 수가 없다. 단기 기억이 저장되지 않기 때문이다. 알코올성 치매 예방을 위해서라도 술은 적당히 마셔야겠다. 치매의 첫 단계인지 명사를 기억하지 못할 때가 많다. 이름이 생각나지 않아서 ‘그거’라는 말을 많이 사용한다. 나이가 들면서 많은 명사를 잃어버렸다. 기억하려고 여러 번 애써도 아예..

수필 2023.06.04

나는 아직도 공이 두렵다

골프가 대중 스포츠로 자리 잡은 지 오래되었다. 주말이 되면 골프채를 트렁크에 싣고 주차장을 떠나는 부부를 많이 본다. 필드에 나가지 않는 날은 골프 연습장에서 만나자고 약속한다. 노년에 파크골프를 치는 사람들이 폭발적으로 늘어나서 골프채 생산업체가 우후죽순처럼 늘어나고, 그 가격도 만만치 않다고 한다. 재직할 때 골프에 대한 유혹을 많이 받았다. 관리자니까 당연히 골프를 칠 것이라 생각하고 필드에 같이 가자고 제안하는 부장이나 교사들이 많았다. 내가 골프를 치지 않는다고 하면 모두 놀라는 눈치다. 골프를 모르는 나를 조금은 불쌍하게 보면서 지금 배워도 늦지 않다고, 골프 연습장에 같이 가자는 선생님도 있었다. 퇴직하기 전에 파크골프 연수를 받는 친구들이 많았다. 퇴직 후 모임에서도 골프 이야기는 빠지지..

수필 2023.05.26

명함의 쓸모

명함을 처음 가진 것은 23년 전이었다. 엔조이스쿨에서 실시하는 이벤트에 당선되어 ‘김대영/대구○○초등학교’라는 명함을 받았다. 학생을 가르치는 직업이라 명함이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던 때였고, 명함을 사용할 기회도 오지 않았다. 교사 중에서도 명함을 가진 사람이 있었는데 명함 뒷면에 문학 및 음악 단체의 감투를 여럿 나열하고 있어서 자기 과시욕이 대단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초등교육 전문직으로 근무할 때는 조직 개편이 빈번하였다. 부서가 바뀔 때마다 명함을 받았다. 기관명, 직책, 주소, 전화로 되어 있는 명함 앞면에 교육정책을 알리는 문구가 들어가기 시작했다. 직책과 이름만 다른 획일화된 명함이 난무하였다. N초등학교 교장으로 발령받았을 때, 직책과 이름을 ‘교장/○○박사 김대영’이라고 인쇄했다. N..

수필 2023.05.26

체육복 찾기

가을에 입는 체육복이 어느 순간 보이지 않았다. 2019년에 체육전담교사를 할 때 구입한 옷이다. 바지는 검은색, 윗도리는 청색의 점퍼 스타일이다. 독특한 모양의 옷이라 체육 시간이 아니라도 자주 입고 다녔다. 안방 옷걸이에서 여러 번 찾아보고, 내가 근무하는 A초등학교 교사연구실과 수업지원을 하러간 교실의 책상 서랍을 뒤져봐도 없었다. 아내에게 같은 모양의 체육복이 있으면 새로 사달라고 했다. 아내가 그런 모델의 옷은 더 이상 나오지 않는다는 대답을 들었다고 했다. 체육 시간에 입기 위해 모자와 함께 종이 가방에 넣어서 가져간 기억은 있었다. 그런데 그날 수업을 하지 않아서 어디엔가 둔 것 같은데 아무리 생각해도 그 장소가 생각나지 않았다. A학교에 없으니 수업 지원을 하러 간 다른 학교에 있을 것이다..

수필 2023.05.19

나의 소원

경상북도교육청문화원에서 공연을 봤다. 고객 참여형 패러디 콩트, 외국인만 모르는 대한민국 공감대 개그, 속담 개그 등이 기억에 남는다. 개그는 다른 사람에게 웃음을 주기 위해 즉석에서 하는 대사나 몸짓이다. 한때 모 방송국의 개그 콘서트는 인기가 많아서, 어린이들이 개그 코너를 흉내기도 하고 장래 희망을 개그맨으로 적기도 했다. 개그에서는 대본에 있는 말보다는 즉흥적이고 재치 있는 애드립이 우리에게 웃음을 안겨준다. 말을 빠르게 하는 것보다 순간적인 임기응변이나 그 상황에서 전혀 생각할 수 없었던 기발한 말들이 개그를 맛나게 한다. 개그맨보다 말을 빠르게 하는 사람은 래퍼가 아닐까. 랩 경연 프로그램을 보면 어떻게 그렇게 정확한 발음으로 빠르게 말하는지 신기할 정도다. 개그맨이나 래퍼는 말의 천재라고 불..

수필 2023.05.18

국통산 등산로를 걷다

7시 50분에 학교에 도착했다. 40분 동안 산책할 수 있다. 교실에서 체육복으로 갈아입고 밖으로 나간다. 학교 담장을 지나 동쪽으로 난 길을 걷는다. 우보면사무소 뒷길이다. 길가에서 조금 떨어진 산기슭에는 보라색 등나무꽃이 송이송이 달려있고 길 옆에는 노란 애기똥풀이 여기저기 피어 있다. 길이 끝나는 곳에서 왼쪽으로 돌아 교회를 지나면 등산로 입구이다. 길 오른쪽은 꽤 넓은 대추밭이다. 연두색 대춧잎이 구불구불한 가지 끝에서 피어난다. 왼쪽은 무덤이다. 등산로에서 처음 마주치는 것이 무덤이라니…. 너도 언젠가 나처럼 될 거라고 무덤 속 주인이 말하는 듯하다. 무덤 앞쪽에 무리지어 핀 영산화가 햇살 아래 붉게 타오른다. 무덤 속 주인도 영산화를 좋아했을까. 봄에 활짝 피는 저 꽃처럼 화려한 젊은 시절을 ..

수필 2023.05.18

개 팔자가 상팔자

조카가 수성구에 있는 아파트로 이사했다. 아내와 함께 축하해주러 갔다. 입택 기념으로 중국 음식점에서 저녁을 대접한다 하여 예약해둔 식당에 갔다. 나와 아내, 동생 부부와 조카가 회전판이 돌아가는 둥근 탁자에 둘러앉아 코스 요리를 먹었다. 중식당에서 나와서 조카 집으로 갔다. 현관문을 열자마자 혼자 있던 강아지가 꼬리를 흔들면서 열렬히 반긴다. 거실에 들어서는 사람마다 두 발을 올려 바지에 대고 꼬리를 흔든다. 조카가 키우는 마티푸(마티즈+푸들) ‘살구’다. 뒷발로 서면 머리가 내 무릎에 닿을 정도로 키가 작다. 갈색 털이 곱슬곱슬하고 다리가 길고 배는 홀쭉하여 날렵하게 생겼다. 작고 검은 눈은 늘 반짝이고, 입은 꼭 다물고 있어서 언뜻 봐도 명견임을 알 수 있다. 아파트는 30평이고, 남북으로 트인 거..

수필 2023.05.18

다이어트의 적(敵)

몸이 불어나기 시작한 것은 결혼 후부터였다. 주위 사람들이 총각 때보다 보기 좋다고 했지만, 표준 체중을 유지하고 싶다는 생각은 늘 하고 있었다. 연금 생활자가 되고부터 본격적으로 살을 빼기로 했다. 평일 오전에는 헬스클럽에 다녔다. 러닝머신에서 달리고 각종 헬스기구를 이용하여 상체 운동을 하고 하체를 단련했다. 뱃살을 빼기 위해 윗몸일으키기를 하고, 마무리 운동으로 실내자전거를 탔다. 샤워를 하면서 근육질 몸매를 가진 사람을 부러워했다. 나도 곧 저런 몸매를 가지게 되겠지…. 헬스장에 다닌 지 6개월 후에는 1년 치 사용료를 한꺼번에 결제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코로나가 시작되었다. 헬스장이 문을 닫았다. 다시 열었을 때는 아내가 말려서 가지 않았다. 일요일에는 만보걷기를 했다. 매주 토요일 고향에 가..

수필 2023.02.22

교통사고 유감

출근하는 길에 1톤 트럭을 추돌하였다. 붉은색 신호등을 보며 서행하다가 나도 모르게 졸았던 모양이다. 비상등을 켜고 차에서 내렸다. 앞차 운전수도 트럭 뒤쪽으로 왔다. 오른쪽 깜박이에 작은 구멍이 났고, 그 외에는 별다른 이상이 없는 것 같았다. 내 차는 후드가 조금 찌그러졌고, 번호판 고정 나사가 떨어져 나갔다. 트럭 기사가 사진을 여러 장 찍었다. 길가로 차를 이동시키고 나서 다친 데는 없는가 물었더니 대답하지 않았다. 운전수는 회사 소유의 차라서 출근해야 한다, 사건이 접수되면 알려달라 하고는 차를 몰고 가버렸다. 현장에 나온 보험사 직원에게 사고 접수를 하고 학교 근처 정비센터에 차를 맡겼다. 저녁때 보험사 직원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트럭에 세 사람이 타고 있다가 모두 다쳤는데 병원에 가도 되는..

수필 2023.02.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