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나라

행복한 청소부

kdy820 2017. 6. 28. 10:24

행복한 청소부

모니카 페트 지음/안토니 보라틴스키 그림/김경연 옮김


  독일에 거리 표지판을 닦는 청소부 아저씨가 있었다. 아저씨는 아침 7시면 일을 하러 집을 나선다. 30분 정도 지나 표지판 청소국에 도착한다. 아저씨는 유리창 너머 수위 아저씨에게 인사하고, 탈의실로 들어간다.

  탈의실에서 파란 작업복으로 갈아입고, 파란색 고무 장화를 신고, 비품실로 건너가, 파란색 사다리와 파란색 물통과 파란색 솔과 파란색 가죽 천을 받는다.

  아저씨가 이 청소도구들을 한데 꾸릴 때, 다른 청소부들도 자기 도구를 챙긴다. 서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런 다음 다들 자전거 보관실에서 파란색 자전거를 꺼내 타고 청소국 문을 나선다.

  표지판 청소부들이 자전거를 타고 떠나는 모습은 정말 볼만했다. 마치 커다란 파란 새들이 떼지어 둥지를 떠나는 것 같았다.



  청소부 아저씨는 몇 년 전부터 똑같은 거리의 표지판을 닦고 있었다. 바로 작가와 음악가들의 거리이다. 바흐 거리, 베토벤 거리, 하이든 거리, 모차르트 거리, 바그너 거리, 헨델 거리, 쇼팽 광장, 괴테 거리, 실러 거리, 슈토름 거리, 토마스 만 광장, 그릴파르치 거리, 브레히트 거리, 케스트너 거리, 잉게보르크 바흐만 거리. 마지막으로 또 빌헬름 부슈 광장. 거기까지가 아저씨가 맡은 곳이었다.

  표지판은, 닦아 놓았나 싶으면 금방 다시 더러워진다. 그러나 훌륭한 표지판 청소부는 그런 일에 기죽지 않는다. 더러움과의 싸움을 포기하지 않는다.

  청소부 아저씨는 정말 훌륭했다. 아저씨가 맡은 거리의 표지판은 깨끗할 뿐만 아니라, 새 것처럼 보였다. 다른 청소부들도 진심으로 아저씨가 '최고'라는 걸 인정했다. 표지판 청소부 반장과 청소국 국장도 이따금 아저씨의 어깨를 툭툭 두드리며 "잘 하십니다!"라고 칭찬했다.



  아저씨는 행복했다. 자기 직업을 사랑하고, 자기가 맡은 거리와 표지판들을 사랑했다. 만약 어떤 사람이 아저씨에게 인생에서 바꾸고 싶은 것이 있느냐고 물었다면, "없다"라고 대답했을 것이다. 어느 날 한 엄마와 아이가 파란색 사다리 앞에 멈추어 서지 않았더라면 계속 그랬을 것이다.

  "엄마, 저것 좀 보세요! 글루크 거리래요!" 아저씨가 막 닦아 놓은 거리 표지판을 가리키며 아이가 외쳤다.

  "저 아저씨가 글자의 선을 지워 버렸어요!"

  "어디 말이니?" 엄마가 깜짝 놀라 위를 쳐다보며 물었다.

  "저기요. 글뤼크 거리라고 해야 하잖아요?"

  독일어로 글루크는 아무 뜻이 없지만 글뤼크는 '행복'이란 뜻이 있다.

  "그렇지 않아. 글루크가 맞단다. 글루크는 작곡가 이름이야. 그 이름을 따서 거리 이름을 붙인 거란다." 엄마가 대답했다.

  버스 한 대와 트럭 두 대가 덜커덕거리며 지나갔다. 그 바람에 엄마의 목소리가 묻혀 버렸다. 다시 조용해졌을 땐 엄마와 아이는 이미 그 자리를 떠나고 없었다.



  아저씨는 당황해서 다시 한번 표지판을 쳐다보았다. 문득 글루크라는 사람에 대해 그 아이만큼 아무것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명한 사람들의 이름을 늘 코앞에 두고 있으면서도, 정작 그들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지 뭐야. 그건 안 되지. 이대로는 안 돼. 아저씨는 생각했다.

  아저씨는 사다리에서 내려와, 바지 주머니에서 동전을 꺼내 공중에다 던졌다. 그림이 나오면 음악가부터 시작하고, 숫자가 나오면 작가부터 시작할 생각이었다.

  동전이 바닥으로 쨍그랑 떨어지며, 반짝반짝 춤을 추며 돌다 핑그르르 멈췄다. 그림이 나왔다. 아저씨는 몸을 굽혀 동전을 주워들었다. 그리고 이제 무엇부터 해야 할지 손으로 동전을 돌리며 곰곰 생각했다. 근무 시간이 끝날 때까지 기다릴 수 없을 것 같았다.

  아저씨는 일을 마치는 다섯 시가 되자 재빨리 자전거에 올랐다. 머리를 휘날리며 표지판 청소국으로 달려가, 급히 옷을 갈아입고 집으로 갔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아저씨는 종이와 연필을 찾아 이름을 죽 썼다.

  글루크 - 모차르트 - 바그너 - 바흐 - 베토벤 - 쇼팽 - 하이든 - 헨델

  아저씨는 이름들을 다시 한번 훑어보고 압정으로 벽에 붙여 놓았다. 다음에는 신문을 꼼꼼히 보며 음악회와 오페라 공연에 관한 정보를 모았다. 어떤 것들은 공연 날짜를 수첩에 적어 놓기도 했다. 그 날이 오면 입장권을 사고, 옷장에서 좋은 양복을 꺼내 입고, 음악회장이나 오페라 극장으로 갔다.

  이제 내가 부족한 게 뭔지 알 것 같아. 주위가 긴장될 정도로 고요해지면, 종종 아저씨의 머릿속에 그런 생각이 스쳤다.

  음악 소리가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조심조심 커지다가, 둥글둥글 맞물리다, 산산히 흩어지고, 다시 만나 서로 녹아들고, 바르르 떨며, 움츠러들고, 마지막에는 갑자기 우뚝 솟아오르고는, 스르르 잦아들었다.

  아저씨는 오싹 몸을 떨며 멍한 상태에서 깨어났다. 종이 부스럭거리는 소리, 우르르 걸어가는 발소리......

  문이 열리고 사람들은 왁자지껄 밖으로 나갔다. 아저씨는 주위를 돌아보며 미소를 지었다.

 


  크리스마스가 되자 아저씨는 레코드 플레이어를 샀다. 이를테면 자기 자신에게 크리스마스 선물을 한 것이다. 포장을 풀어 플레이어를 꺼내 크리스마스 트리 밑에 갖다 놓고, 엄숙하게 첫 번째 레코드판을 올려놓았다.

  아저씨는 밤새 거실에 누워 음악을 들었다. 그러자 차츰차츰, 오래 전에 죽은 음악가들이 다시 살아나 가장 좋은 친구가 되는 느낌이 들었다. 그들의 음악을 들으며 속으로 묻고 대답하고, 마치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것 같았다.

  아저씨는 일을 하면서 머릿속에 간직한 가락을 나지막히 휘파람으로 불었다. 모차르트의 <소야곡>, 베토벤의 <달빛소나타>. 심지어는 오페라 곡까지 외워서 불었다. 쉬운 일은 아니었다. 휘파람으로 낼 수 있는 건 언제나 한 가지 소리밖에 없고, 다른 소리들은 상상을 해야 했으니까.

  음악가들에게 자신이 생기자 아저씨는 벽에서 명단을 떼어냈다. 그리고 종이를 뒤집어 뒷면에다 새로운 이름들을 썼다. 이번에는 작가들 이름이었다.

  괴테 - 그릴파르처 - 만 - 바흐만 - 부슈 - 브레히트 - 실러 - 슈토름 - 케스터너

  그러고는 종이를 원래 자리에 도로 붙여 놓고, 시립 도서관에 가서 이 작가들이 쓴 책들을 빌렸다.



  몇 주가 지나자 도서관 직원이 아저씨를 알아보고, 친절하게 인사를 건넸다. 아저씨는 도서관 최고의 단골이 되었다.

  아저씨는 전에는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말들을 자꾸만 만나게 되었다. 어떤 말은 무슨 뜻인지 알게 될 때까지 되풀이해서 읽었다.

  저녁이면 저녁마다 아저씨는 책 속의 이야기들에 잠겨 있었다. 아저씨가 거기서 발견한 비밀들은 음악에서 발견했던 비밀들과 무척이나 비슷했다.

  아하! 말은 글로 쓰인 음악이구나. 아니면 음악이 그냥 말로 표현되지 않은 소리의 울림이거나. 아저씨는 생각했다.



  "참 안타까운 일이야."

  어느 날 아저씨는 동료 청소부들에게 말했다.

  "좀 더 일찍 책을 읽을 걸 그랬어. 하지만 모든 것을 다 놓친 건 아니야."

  글은 아저씨의 마음을 차분하게도 했고, 들뜨게도 했다.

  또 아저씨를 곰곰 생각에 잠기게도 했고, 우쭐한 기분이 들게도 했다. 기쁘게도 했고, 슬프게도 했다.

  음악가들이 음을 대하듯, 곡예사가 공과 고리를, 마술사가 수건과 카드를 대하듯, 작가들은 글을 대했다.

  아저씨는 작가들과도 음악가들과 같이 친구사이가 되었다. 작가들의 모든 작품을 알게 되었을 때, 아저씨는 일을 하면서 특별히 마음에 든 구절들을 혼자 읊조렸다.

  괴테의 <마왕>, "누가 이렇게 늦은 밤에 바람 속을 달리는가?" 브레히트의 <악당 매키의 노래>, "그 상어는 이빨이 있다네 / 얼굴에 이빨이 있다네." 또 슈토름의 <백마의 기수>나 빌헬름 부슈의 <막스와 모리츠>에 나오는 구절들.



  이렇게 아저씨는 멜로디를 휘파람으로 불며, 시를 읊조리고, 가곡을 부르고, 읽은 소설을 다시 이야기하면서 표지판을 닦았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그것을 듣고는 걸음을 멈췄다. 파란색 사다리를 올려다보고는 깜짝 놀랐다. 그런 표지판 청소부는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었다. 대부분의 어른들은 표지판 청소하는 사람 따로 있고, 시와 음악을 아는 사람 따로 있다고 생각한다. 청소부가 시와 음악을 알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그런데 그렇지 않은 아저씨를 보자 그들의 고정관념이 와르르 무너졌다. 그들의 고정관념은 수채통으로 들어가, 타버린 종이 조각처럼 산산이 부서졌다.



  사다리 위의 아저씨는 자신이 어떤 사건을 일으켰는지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다. 표지판을 박박 문질러 닦고, 호호 불어 윤을 냈다. 표지판이 반짝반짝 빛나면 비로소 일을 멈추고 쉬었다.

  아저씨는 시립 도서관에서 음악가와 작가들에 대해 학자들이 쓴 책을 빌려 읽기 시작했다. 그 책들은 이해하기 어려웠고, 때로는 결코 끝까지 읽어내지 못하리라는 생각도 들었다.

  시간이 흘러, 아저씨는 꽤 나이를 먹었다. 아저씨는 예나 지금이나 표지판을 돌보고 보살폈다. 이따금 손가락 끝으로 이제는 너무도 소중해진 이름들을 어루만지며, 일하는 동안 자기 자신에게 음악과 문학에 대해 강연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가족이 파란색 사다리 옆에 서서 열심히 아저씨 이야기를 들었다. 어떤 여자아이 둘은 재잘대던 이야기를 멈추고 아저씨를 올려다보았다. 한 젊은이는 가방을 땅에 내려놓고 귀를 기울였고, 거기에 어떤 선생님과 반 학생들도 함께 와서 들었다. 사람들이 모인 것을 보자 다른 사람들이 그 뒤에 가서 섰다.

  아저씨는 아무 것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일을 끝내고 여전히 중얼거리며 파란색 사다리를 내려오는데, 사람들이 박수를 쳤다.

  아저씨는 얼굴이 빨개졌다. 얼른 물건들을 챙겨 다음 표지판을 향해 파란색 자전거를 밀었다. 사람들이 아저씨를 따라왔다. 아저씨는 부담스러웠지만, 따라 오지 말라고 하기가 쉽지 않았다. 일을 계속하며 강연을 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서 밑을 쳐다보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시간이 거북이처럼 기어갔다. 빌헬름 부슈 광장의 교회 시계가 마침내 다섯 시를 가리키자, 아저씨는 휴우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아저씨는 몸을 날리듯 자전거에 올라타고 그 곳을 떠났다.

  다음 날 아침, 사람들은 벌써 바흐 거리에서 아저씨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저씨는 너무 놀라 딸꾹질이 나왔다. 아저씨는 숨을 멈추고 천천히 열까지 센 다음, 파란색 사다리로 올라가 첫 번째 표지판을 닦으며 다시 강연을 시작했다.

  사람들은 아저씨 발꿈치에 바싹 붙어 있었다. 아저씨가 마지막 표지판을 청소하고 마지막 말을 끝내자, 사람들은 웅성웅성 칭찬의 말을 주고받았다.

  아저씨는 도망치듯 자리를 떠났고, 사람들도 뿔뿔이 흩어졌다. 아저씨는 다른 사람들을 생각해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그래서 더욱 열심히 준비를 했다. 웃음거리가 되고 싶지 않았다.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강연을 들으러 왔고, 점점 더 빽빽하게 파란색 사다리를 에워쌌다. 아저씨는 표지판에서 표지판으로 옮겨가며, 사다리를 올라갔다 다시 내려왔지만, 이제는 사람들에게 신경 쓰지 않았다.



  어느 날 '오늘의 인물'이라는 텔레비전 방송에서 카메라맨과 기자가 왔다. 그들은 아저씨를 찍고, 이것저것 질문을 했다. 아저씨는 밤새 유명해졌다.

  모든 것이 온통 뒤죽박죽되었다. 가는 곳마다 아저씨의 사인을 받으려는 사람들이 진을 쳤다. 편지들이 커다란 자루에 가득 찰 만큼 집으로 날아왔다.

  표지판 청소부 반장과 표지판 청소국 국장은 아저씨에게 칭찬을 늘어놓으며 꽃다발을 건네주었다. 아저씨 때문에 표지판 청소국의 위신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네 군데 대학에서 강연을 해 달라는 부탁이 왔다. 그렇게 하면 아저씨는 훨씬 유명해 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저씨는 거절하기로 결심하고 답장을 썼다.

  "나는 하루 종일 표지판을 닦는 청소부입니다. 강연을 하는 건 오로지 내 자신의 즐거움을 위해서랍니다. 나는 교수가 되고 싶지 않습니다. 지금 내가 하는 일을 계속하고 싶습니다. 안녕히 계세요."

  그리고 아저씨는 지금까지 그랬듯이, 표지판 청소부로 머물렀다. 


(여기에 실린 글과 사진은 '풀빛출판사'에서 2006년 12월 20일에 발간한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 행복한 청소부'에서 옮겨 왔습니다. 학생 교육용으로 사용하기 위해 구어체를 문어체로 바꾸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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