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이와 버들잎 소년
옛날 어느 마을에 연이라는 귀여운 소녀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연이의 어머니는 병환으로 돌아가시고 계모가 들어와 같이 살게 되었습니다. 계모는 마음씨가 좋지 못해서 연이를 항상 구박하면서 못살게 굴었습니다. 연이는 날마다 계모가 시키는 일을 해야 했기 때문에 아침부터 저녁까지 쉴 틈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하루는 밭에 나가 풀을 뽑다가 더워서 조금 쉬고 있었습니다.
“뭐가 그리 힘들어서 쉬려는 거야. 꾀만 늘어서 원. 어서 삼밭에 가서 삼이라도 베어와.”
“어머니, 삼은 아직 벨 때가 안 됐어요.”
“그래? 그럼, 밭에 있는 돌이라도 골라내라.”
연이는 밭의 돌을 골라내기 시작했습니다. 그 밭은 돌이 많아서 농사도 짓지 못하는 곳이었습니다. 그러나 연이는 계모의 말을 거역할 수가 없었습니다. 돌을 고르느라 연이의 가냘픈 손가락은 여기저기 상처투성이가 되었습니다.
연이는 밤낮 없이 일하느라, 머리를 빗을 틈도 없어서 예쁜 머리카락은 얽혀서 까치집처럼 되었고, 옷은 헌 누더기가 되었습니다.
어느덧 가을이 가고 추운 겨울이 돌아왔습니다.
“얘야, 내가 갑자기 산나물이 먹고 싶으니 어서 산에 가서 산나물 좀 뜯어 오렴.”
계모는 연이에게 산나물을 뜯어 오라는 것이었습니다. 추운 겨울인데 산나물이 있을 리가 없습니다.
“어머니, 이렇게 추운데 산나물이 있을까요?”
“아니, 이것아. 산에 가서 찾아보지도 않고 너는 입으로 산나물을 캐는 거냐? 못된 것 같으니라고.”
계모는 화가 나서 연이에게 바구니 하나를 던져주고는 산으로 내쫒았습니다.
연이는 하는 수 없이 산으로 올라갔습니다.
“아이 추워. 이렇게 눈이 많이 왔는데 어디에 가야 산나물이 있을까?”
연이는 가냘픈 손가락으로 눈을 헤쳐 보았지만 산나물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연이의 얇은 옷 속으로는 찬바람이 사정없이 스며들고, 손은 꽁꽁 얼어 추워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어머니! 어머니! 보고 싶어요. 흑흑…….”
연이는 하늘나라에 계신 어머니를 불러 보았지만, 아무 대답이 없었습니다.
“이걸 어떻게 하지. 빈 바구니를 들고 그냥 가면 새어머니께 야단맞을 텐데.”
연이는 산 속의 눈밭을 헤매다 그만 길을 잃어버렸습니다.
“아이 추워. 길도 잃어버리고, 해는 저물어가고, 산나물도 캐지 못했으니 아, 어떻게 하면 좋지? 얼은 몸이라도 녹일 수 있었으면 좋겠는데…….”
연이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바위 옆에 작은 굴이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아, 됐다. 이 굴 속에 들어가 있으면 찬바람을 피할 수 있을 거야.”
연이는 작은 굴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한참 가다보니 작은 돌문이 보였습니다. 연이는 작은 돌문을 살그머니 밀어 보았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돌문이 스르르 열리더니 그 안에는 들판이 보이고 들에는 연이가 찾고 있는 산나물이 파랗게 가득 자라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들판 옆에는 아담하고 깨끗한 초가집 한 채가 있었습니다.
“어머나, 산나물이야! 산나물이 이런 곳에 있다니…….”
연이는 꿈을 꾸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저쪽에서 한 소년이 걸어왔습니다.
“무슨 일로 이곳까지 오셨습니까?”
연이는 산나물을 뜯으러 왔다고 말하고 계모의 이야기를 소년에게 들려 주었습니다.
“아가씨는 참 마음도 고우시군요. 산나물은 여기 얼마든지 있으니, 뜯어 가시지요. 그리고 또 오실 일이 있을 때는 돌문 밖에서, ‘수양, 수양 버들잎아! 문 열어라.’ 이렇게 말하면 문이 열릴 것입니다.”
“고맙습니다.”
연이가 부지런히 산나물을 뜯어 바구니에 담아 돌아가려는데 소년이 물병 세 개를 가지고 와서 연이에게 주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얀 물병은 뼈에 바르면 새살이 돋고, 빨간 물병은 가슴에 뿌리면 죽었던 심장이 살아나 뛰며 피가 돌게 되지요. 그리고 파란 물병을 죽은 사람에게 부으면 숨을 쉬며 살아난답니다. 언제 이 약을 쓸 일이 생길지 모르니 잘 간수했다가 쓰시기 바랍니다.”
연이는 소년이 준 이상한 물병을 가지고 돌문을 나와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계모는 눈 속에서 죽은 줄만 알았던 연이가 산나물을 뜯어서 돌아와서 깜짝 놀랐습니다.
“아니, 이상도 하구나? 산에 눈이 가득 덮였을 텐데 산나물을 뜯어 오다니. 분명 나한테 숨기고 있는 것이 있을 거야. 어서 숨김없이 털어 놔봐.”
계모는 좋아하기는커녕 도리어 연이에게 호통을 쳤습니다.
연이는 할 수 없이 소년을 만난 이야기를 계모에게 다 들려주었습니다.
“흥, 거짓말은 아니겠지? 내가 가서 확인해 봐야지.”
계모는 연이가 말한 대로 돌문 앞에 가서 주문을 외웠습니다.
“수양, 수양 버들잎아! 문 열어라. 연이가 왔다.”
그러자 돌문이 스르르 열리며 소년이 나왔습니다.
“아니, 연이 아가씨가 아니군요.”
“무엇이! 연이인 줄 알았더냐? 그래, 이 못된 것들이 만나서 나쁜 짓만 했구나.”
계모는 갑자기 화를 내면서 초가집을 불태우고 채소밭을 모두 파헤쳐 버렸습니다. 그 바람에 소년도 연기에 질식해 쓰러졌습니다. 계모는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너, 이 추운 겨울에 산나물을 잘도 뜯어 오더라. 어서 가서 다시 산나물을 뜯어 오너라. 뜯어 오지 못하면 이번엔 당장 내쫒을 것이야.”
연이는 왠지 불안한 생각이 들어서 버들잎 소년이 살고 있는 산으로 달려가 보았습니다. 그런데 이게 어찌된 일입니까? 불타 버린 초가집 옆에 소년이 쓰러져 있고, 채소밭은 보기 흉하게 파헤쳐져 있었습니다. 연이는 소년이 준 물병 생각이 났습니다.
“옳지, 이 병에 든 물을 써 보자.”
하얀 병에 있는 물을 먼저 소년에게 뿌렸습니다. 그리고 빨간 물은 가슴에 뿌리고 다시 파란 병의 물을 소년에게 뿌렸습니다. 그러자, 한참 후에 소년은 자고 일어난 것처럼 눈을 뜨고 연이를 쳐다보았습니다.
“아, 살아났군요!”
연이는 소년의 손을 잡아서 일으켜 주었습니다. 버들잎 소년은 옛날보다 더 씩씩한 소년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소년이 살아나자 신기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들에는 파란 산나물과 채소들이 다시 살아 무성했고, 초가집도 옛날 그대로였습니다. 착한 연이와 버들잎 소년은 돌문을 닫은 채 아무도 모르는 아름다운 세상에서 평화롭게 잘 살았습니다.
(2012.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