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서 리뷰

컨셔스(CONSCIOUS)

kdy820 2020. 7. 26. 20:43

2차 의식의 강화로 주체적이고 능동적인 삶을 살 수 있게 하는 자기계발서이다. 지은이 문성림은 뉴욕대학에서 러시아문학을 전공하고, 20여 년간 외국계 회사와 컨설팅 회사에 근무했다. 2016년 어느 날, 자신의 인생 전략을 세워야겠다고 결단하고 3년간 고군분투한 끝에 마침내 그 답을 ‘의식’에서 찾았다.

 

이 책은 4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장 ‘감각’에서 ‘의식’으로. 2장 삶을 바꾸는 힘, 의식. 3장 의식을 움직이는 무의식. 4장 새로운 행복 공식.

 

1.  1차 의식

우리는 태어나서 지금껏 눈 앞에 보이는 대로 환경이 주어지는 대로 학교에 다니고 배우고 생각하고 행동하고 일하고 먹고 마시는 등 모든 일이 저절로 그렇게 될 수밖에 없도록 학습 신경회로를 타고났다. 그래서 지금까지 내가 의식을 갖고 선택하고 결정하고 행동했다고 생각한 이 ‘나의 의식’은 허구다. 내가 한 행동이 아니라고 부정할 수는 없지만, 진정한 ‘내 의식’에 의한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이렇게 본질적으로 생물학적 구조에 의해 일생을 살며 나도 모르게 내 것인 줄 알고 갖게 되는 의식이 ‘1차 의식’이다. 1차 의식은 유전적이다. 자동적이다. 무의식적이다. 그러니 진정한 ‘나’가 개입되지 않는다. 1차 의식은 이처럼 수동적 의식이다. 이것이 이 세상이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명쾌한 이유다. 1차 의식이 자동으로 작동되면 될수록 나의 정체성과는 점점 거리가 멀어진다. 대부분 사람들은 이렇게 1차 의식에 의지하여 ‘나’라는 착각 속에서 평생을 살아간다. 한 번도 의심 없이 말이다.

과학 잡지 ‘뉴턴’은 ‘98퍼센트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상의 활동, 즉 학습이 끝난 행동을 반복하며 살아갈 뿐’이라고 밝혔다. 그러니까 우리 지구인들 거의 모두는 1차 의식에 의해 살아가고 있다.(63쪽)

 

2.  2차 의식

2차 의식은 나의 삶을 다시 새로 시작한다는 마음의 발현에서만 불러올 수 있다. 2차 의식은 ‘진정한 나’가 개입되는 능동적 의식이다.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완전히 ‘새로운 경험’의 의식이다. 지금까지의 자동화된 습관이 아닌 새롭게 학습된 의식이다. 힘과 열정, 즉 긍정 에너지가 생성되는 의식이다. 나의 의식이 상승하고 성장하며 발전하는 것이다. 건설적이고 생산적이다. 따라서 ‘2차 의식’은 곧 창조의식이다.

2차 의식을 불러오는 첫걸음은 나를 제대로 바라보는 데서 출발한다. 나의 삶을 새로 시작하는 것은 나를 제대로 아는 시작점에서만 가능하다. 지금껏 솔직히 나를 잘 몰랐다. 내가 ‘1차 의식’에 의해 살아가고 있는지도 눈치채지 못했다. 무의식의 강력한 힘을 인지하지 못한 채 살았다. 나도 나를 모르는데 누가 나를 알아줄 리 만무하다.

나를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바깥쪽을 향하던 내 시선을 안쪽으로 향하게 해야 한다. 남이 아닌 나를 의식하게 해야 한다. 나 자신을 똑바로 바라볼 수 있어야 진정한 내 의식, 2차 의식을 찾을 수 있다. 자기 자신을 바라보고 관찰하는 데서 출발하여 다시 나아가야 할 의식 방향을 찾아야 한다. 그것은 나의 정체성을 찾는 일이다, 나를 의식하며 살아야 한다. 지금까지 학습된 것이 아닌, 새로운 자극과 영감을 주는 쪽에 신경을 써야 한다.

나의 ‘진짜 의식’인 2차 의식은 관찰의 조각, 성찰의 조각, 상상의 조각, 계획의 조각, 학습의 조각, 창조의 조각으로 내게 다가온다. 우리의 ‘진짜 의식’은 이렇게 단편 조각 같지만, 매우 섬세하고 칼날같이 예리하며, 조각 하나하나마다 알 수 없는 힘이 있다.(75~76쪽)

 

3. 2차 의식의 여섯 조각

 

1) 관찰의 조각

관찰은 멈춤이다. 앞만 보고 달려가던, 1차 의식으로 살아가던 길에서 잠시 멈춰 고요히 나를 들여다보는 일이다. 우리 인생은 항상 무언가에 쫓기고 분주하다. 어디로 향해 나아가는지 모를 안개 속에 뿌옇게 갇혀 있다. 이 멈춤은 우리 인생에 필요한 시간이다. 관찰은 멈추어 집중해서 응시하고 면밀히 살펴보는 일이다. 주의 깊게 자세히 쳐다보고 파악하는 일이다. 나 자신을, 나의 말을, 내 생각을, 내 행동을 나는 스스로 관찰자가 되어 나 자신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처음으로 관찰해야 할 대상은 나의 하루를 온통 뒤덮고 있는 나의 ‘생각’이다.(89쪽)

① 생각 관찰하기: 미 국립과학재단(National Science Foundation)은 보통 사람들은 하루에 많게는 6만 가지 생각까지 하고 살며, 그중 80퍼센트는 부정적인 생각, 95퍼센트는 전날 했던 생각의 반복이라는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부정적 생각을 많이 하고 산다. 그것도 매일. 한 가지 부정적 생각이 떠올랐을 때 그 생각을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붙들어 그 생각에 얽매이게 된다. 그 생각과 얽히기를 무의식적으로 선택한 셈이다. 굳이 용어를 찾는다면 ‘집착’이다.(89~91쪽)

엘리자베스 블랙번(Elizabeth Blackburn)과 엘리사 에펠(Elisa Epel) 박사는 부정적 생각의 대부분이 ‘반추’라고 지적한다. 반추는 반성과 다른 말이다. ‘반성은 일어난 이유에 관한 자연스러운 호기심이나 내면 관찰이나 철학적 분석이다. 건강한 불편함을 빚어낼 수도 있다. 반면, 반추는 자신의 문제를 계속 다시 떠올리는 행위다. 반추는 그저 문제를 푸는 행위처럼 보이는 것에 불과하다. 반추에 사로잡힌다는 것은 점점 더 부정적이고 자기 비관적인 사고라는 소용돌이에 빠져드는 것과 비슷하다.’

블랙번과 에펠 박사는 이러한 반추를 포함한 ‘부정적인 마음 방황’이 결국 스트레스와 연관이 되고, 그것은 텔로미어의 길이를 줄여 노화의 진행과 연관 있음을 연구에서 밝혔다. 부정적 마음 방황으로 가득한 삶을 살아가면 우린 더 빨리 늙을 수밖에 없다. 이 방향에서 빨리 벗어날 방법을 찾아야 한다.(91~92쪽)

관찰하기 위해서는 일단 생각과 나를 분리해야 한다. 분리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마음의 눈으로 마음속을 가만히 들여다보는 것이다. 김상운의 ‘왓칭’에서는 마음의 눈으로 들여다보는 순간 생각과 나 사이에 거리가 생기고, 생각과 나는 저절로 분리된다고 한다. 생각과 분리되어 관찰을 바르게 할 때 관찰자 입장이 되기 때문에 감정이 일어나지 않는다. 그저 바라보는 상태가 된다,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생각 덩어리들을 상상 속의 스크린이나 백지에 투사해 가만히 바라보라. 바라보면 바라보는 의도를 읽어내고 저절로 물러간다. 하지만 또 다른 생각이 피어오른다. 그럼 또 바라보라. 또 사라진다. 억누르려 들면 기승을 부리며 더욱 피어오르던 생각이 어서 나오길 기다리며 지켜보면 청개구리처럼 오히려 냉큼 나오지 않는다. 이게 생각의 속성이다.(93쪽)

 

② 명상으로 관찰하기: 생각과 나를 분리해 관찰하기의 또 다른 방법 중 하나는 명상적 기법이다. 미국은 벌써 오래전부터 마음챙김 명상(mindfulness meditation)이 인기를 끌다 최근에 주류로 급부상했다. 마음챙김 명상의 핵심 역시 관찰하기다. 생각이나 감각은 어제나 느낌을 동반한다. 현재의 생각이나 감각을 통한 느낌을 관찰할 수도 있고 지금 나에게 불편하게 느껴지는 치통이나 두통을 관찰할 수도 있다. 핵심은 바로 지금 나에게 일어나고 있는 현상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것이다. 이때 주의 집중을 하게 된다. 그리고 2차 의식이 작동된다. 집중의 목적은 마음을 고요하게 안정시켜 지금 일어나는 일을 더 명료하고 차분하게, 덜 반응하는 방식으로 관찰하기 위해서다. 이때 ‘지금 일어나는 일’이란 주로 우리의 마음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가리킨다. 슬픔, 걱정, 짜증, 안도감, 기쁨 같은 느낌이다.

지금 일어나는 일을 관찰하면 부정적 마음 방황이나 좋지 않은 느낌에서 벗어날 수 있다. 특정 생각이 떠올랐다면 그 생각을 붙들지 말고, 그냥 저절로 사라질 때까지 가만히 지켜보는 것, 어떤 느낌이 느껴졌을 때, 그 느낌을 그저 가만히 바라보는 것, 그것이 올바른 관찰이다.

하버드대학의 질 테일러(Jill Taylor) 박사는 ‘부정적 생각이나 감정의 자연적 수명은 90초이다. 90초가 지나면 저절로 완전히 사라진다.’고 말했다. 부정적 생각이나 느낌은 그저 조용히 주시하는 것만으로 90초 내에 식어버린다.(93~96쪽) 이 밖에 공간 관찰하기, 이름 붙이기, 일상에서 관찰하기, 말 관찰하기가 있다.

 

2) 성찰의 조각

성찰할 때 우리의 의식은 고요한 바다를 비추는 등대처럼 움직인다. 성찰은 관찰의 연장선상에 있다. 지금까지 자신의 생각과 말과 행동을 관찰했다면, 그중 부정적인 면에 대해 더 깊은 곳에 있는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것이다. ‘관찰’이 그냥 바라보는 것이었다면, ‘성찰’은 잘못된 점을 찾아 반성하는 행위로 이어지는 일이다. 그리고 다시금 잘못된 일이 벌어지지 않게 하기 위한 다짐으로 이어져야 한다.

우리는 일상 속 생각, 말, 행동의 관찰을 통해서 부정적인 것들과 마주했다. 이를 바라보는 데서 그치지 않고 좀 더 면밀히 파고 들어가면 왜 그러한 부정적 생각과 말, 행동을 하게 되었는지 이유를 확인할 수 있다. 드디어 자신의 마음 밑바닥을 꿰뚫어 보게 되는 순간이다. 그 마음은 대체로 불편한 내용들로 가득하다. 그래서 피하고 싶어진다.

성찰은 사색과 사유가 결합된 행동이다. 자신의 마음을 점검하고 파악하는 일은 사색하고 사유하는 과정을 통해 일어난다. 데카르트는 추운 겨울이면 난로 앞에서 온종일 명상하며 사색에 잠겼다. 사색과 사유를 통해 자기 자신을 파악하고 자신만의 철학을 탄생시켰다. 난로 밖으로 나올 때 철학의 절반은 완성되었다고 말했다.(102~104쪽)

사유한다는 건 정확히 무슨 의미일까? 사유(思惟)의 한자어를 보면 생각 사, 생각할 유이다. 생각을 거듭한다는, 즉 깊이깊이 생각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사전적 의미를 들춰보면 ‘마음으로 생각함’이라고 쓰여 있다. 그냥 생각을 깊이 많이 한다는 의미를 넘어서서 ‘마음으로’ 생각한다는 의미다. 머리가 아닌 마음으로 생각하기다. 생각하고, 또 생각하고 깊이 생각한다는 건 결국, 두뇌의 폭을 떠나 마음으로 광대하고 무한하게 그 어떤 제한 없이 자유롭게 하는 것을 의미한다. 나 자신을 끝없이 깊고 무한한 마음으로 생각하고 들여다보아야 나를 바로 알 수 있다.

자신을 돌아보고 제대로 알고 난 후에는 자기 자신에게 친절해져야 한다.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인정한 후에는 다독임이 필요하다. 그래야 다시 일어설 힘이 생긴다. 우리가 잘하지 못하는 것 중 하나가 자기 자신을 칭찬하는 일이다. 우리는 셀프 칭찬에 좀 익숙해져야 한다.

관찰하고 성찰하는 목적은 무엇인가? 내 안의 부정적인 마음을 바라보고 부정적인 행동을 알아차리고 다시는 이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다. 그 느낌에 사로잡히지 않기 위해서다. 그냥 그 마음을 바라보는 것만으로 우리는 부정적인 마음을 멈출 수 있다.(108~109쪽)

신경과학자 안토니오 다마지오(Antonio Damasio)는 ‘인간의 정서와 기분은 의사결정과 의식 같은 높은 수준의 정신 활동 과정에 본질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했다. ‘The Feeling of What Happens’에서 그는 어떤 특정 기념일이나 이벤트가 있을 때뿐 아니라 평상시에 기분 좋은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런데 일상 자체가 부정적 마음 방황으로 가득하다면, 기분 좋은 상태를 유지하기 어렵다. 앤서니 로빈스(Anthony Robbins)가 저서 ‘네 안에 잠든 거인을 깨워라’에서 첫 번째로 강조한 것이 ‘매일매일 최상의 감정 상태를 유지하라’인 것도 이 때문이다. 그래야 바르고 유익하고 생산적인 2차 의식에 의한 사고와 행동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109~110쪽)

 

3) 상상의 조각

상상할 때 우리의 의식은 밤하늘을 가득 채운 별처럼 반짝반짝 빛이 난다. 인간은 다른 생명체에는 없는, 상상하는 능력을 특별히 지니고 태어난다. 상상은, 생명체가 인간으로 진화하면서 뇌에서 새롭게 생겨난 대뇌피질이라는 기관에서 담당한다.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에 따르면, 호모사피엔스가 유일한 종으로 살아남아 이 짧은 시간에 이토록 거대한 세계를 만들어 낼 수 있었던 건, 상상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인간은 작은 단체와 집단의 규모를 뛰어넘어 문화를 만들고 국가를 형성했다. 종교와 자본주의, 민주주의 대기업 등은 모두 상상의 산물이다.(110~111쪽)

우리가 상상하는 능력을 특별히 부여받은 이유는 꿈을 꾸는 데 사용하기 위해서다. 어른이 되면 보통 꿈이라는 것 자체가 사라진다. 꿈을 꾸려는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그러나 지금은 100세가 넘어서도 살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꿈은 어릴 때나 꾸는 것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오래 산다. 굳이 직업이라는 걸 중심으로 생각해야 한다면 두세 개의 직업을 가져야 살아남을 수 있는 시대다. 마흔에도 쉰에도 환갑에도 우리는 꿈이 있어야 한다.

꿈을 상상할 수 있는 능력은 우리 모두에게 공평하게 주어진다. 늦은 나이라는 건 있을 수 없다. 70세에 앞으로 30~40년 이상 무얼 하며 살면 좋을지, 80세에도 앞으로 20년을 어떻게 더 재미나게 살 것인지, 그런 상상을, 그런 꿈을 꾸는 것이 이상하지 않다. 나이가 들었다고 해서 어떻게 요리해 먹으면 더 맛있을지, 어떤 산책로를 새롭게 만들지, 또 어떤 친구를 사귀고 노래를 배우며 글씨체를 개발하고 오디오북을 듣고 낯선 곳으로 여행을 떠날지 생각하는 게 이상한 일인가? 그러지 않는 게 오히려 더 이상하지 않은가?

우리는 꿈과 직업을 동일시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꿈은 직업일 수도, 다른 물질적일 수도, 건강이나 외모, 환경적인 것일 수도, 또는 인생의 가치관이나 성격 등 비물질적인 변화일 수도 있다. 소소한 일상거리일 수도 있다, 그건 우리가 처한 환경이 모두 다르듯 사람마다 다르다. 꿈을 꾼다는 것, 무언가가 된다는 것, 이것은 명사로도 동사로도 형용사로도 정할 수 있다. 내 자유로 결정할 수 있는 문제다.

우리는 모두 무언가가 되어 간다. 요리사가 꿈일 수도, 여행가가 꿈일 수도 있지만, ‘진실한 사람이 되어가는 것’이 꿈일 수도, 더 ‘창의적인 일을 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 꿈일 수도, 낙관주의가 꿈일 수도, 맑은 영혼을 갖겠다는 게 꿈일 수도 있다. 정직이 꿈일 수도, 환경운동가가 꿈일 수도 있다. 이처럼 꿈의 형태는 매우 다양하고, 우리는 모두 무언가를 향해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우리가 몇 세기를 통틀어 가장 천재적인 인물 중 하나라고 알고 있는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평생에 걸쳐 7,200쪽에 달하는 노트를 썼다. 온갖 그림과 수학 공식, 글, 할 일 목록, 관찰한 내용, 실험 결과, 다양한 생각의 설계와 스케치, 도무지 알 수 없는 알쏭달쏭한 말들로 가득한 그의 ‘꿈 노트’다. ‘상상의 노트’다. 그리고 그는 일생을 걸쳐 과학과 예술을 넘나드는 수많은 작품을 탄생시키는 기적을 일으켰다. 몇 년째 똑같은 궁금증과 똑같은 할 일 목록을 적고 또 적기를 되풀이했다고도 알려져 있다, 호기심이 풀릴 때까지, 만들어 낼 때까지 수년이 걸려도 상관없었다. 그의 꿈은 수도 없이 많아 수없이 많은 꿈을 실현할 수 있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일생은 오롯이 2차 의식으로 이루어졌다.

우리의 뇌는 현실과 가상을 구분하지 못하는 특징이 있다. 참인지 거짓인지 구별하지 못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어떤 행동을 직접하지 않고 상상만 해도 그 효과를 보는 사례는 무수히 많다. 상상 속에서 살을 빼니 실제로 살이 빠지고, 상상 속에서 골프를 치고 기록을 세우니 실제 현실에서 그 기록을 세우고, 상상 속에서 금메달을 따니 실제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는 일은 실제 이 세상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자기 자신에게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 것은 상상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렇게 2차 의식은 꿈을 꾸기 위해, 그 꿈을 생생하게 상상하기 위해, 결국 그 꿈을 실현하기 위해 가장 중요하고 가장 강력히 필요한 의식의 조각이다.(113~116쪽)

 

4) 계획의 조각

계획할 때 우리의 의식은 마치 건축가처럼 의식의 집을 짓는다. 인간만이 먼 미래까지 계획할 수 있다. 계획하는 능력은 상상하는 능력의 연장선상에 있다. 꿈을 마치 실제처럼 생생하게 상상하는 일이 가장 중요한 일이지만, 그 꿈의 실현은 계획 없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계획은 꿈을 향한 행동의 설계도다. 꿈을 단계별 프로세스로 계획하고 그 계획을 끊임없이 그 상상의 이미지 범주 속에 넣어야만 이것이 진짜 현실로 나타난다. 계획이 상세할수록 구체적일수록 생생할수록 효과적이다. 매우 상세하고 구체적인 실행계획을 세울수록 2차 의식이 강하게 운동한다. 실행계획을 세운 이후에는 그 실행과정을 하나하나 상상하며 이미지를 또렷이 그릴수록 성공 확률이 올라간다.

인간과 98.8퍼센트 유전자가 일치하는 침팬지는 오늘 하루를 산다. 그들의 생체리듬은 계절에 반응할 뿐, 계획하는 능력 자체가 없다. 인간은 의식을 작동시켜 계획할 수 있는 능력이 주어진 지구상 유일한 존재다. 가족과 아주 먼 미래를, 자식과 손자까지의 미래를 계획하기도 하며, 직장동료와 회사의 미래를 계획하기도 한다. 시공간을 뛰어넘는 계획을 세울 수 있는 능력은 대단한 것이다.(116~120쪽)

 

5) 학습의 조각

학습할 때 우리의 의식은 의식의 산꼭대기를 향해 성큼성큼 올라간다. 2차 의식은 부분적으로 조각으로 다가오지만, 이 의식은 우리가 원하는 만큼 확장, 강화할 수 있다. 우리의 2차 의식은 새로운 것을 학습할 때 작동하며, 학습하는 만큼 확장된다. 관찰의 의식을 시작으로 우리는 성찰도 할 수 있게 되었고, 꿈도 꾸고 계획을 세울 수 있게 됐다. 우리의 2차 의식은 이전에 접해 보지 못한 새로운 정보와 지식, 새로운 경험, 새로운 생각, 새로운 자극과 영감의 재료들이 우리 안으로 들어오는 만큼, 딱 그만큼 강해진다. 그것의 핵심적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학습의 의식이다.(121쪽)

최근 뇌과학 분야에서 발표하는 자료들을 보면 죽을 때까지 뇌가 발달한다고 소개한다. 우리의 뇌는 자주 쓰지 않는 부분은 점차 약해져 퇴화하고 자주 쓰는 부분은 그것이 완전히 새로운 것이라면 새롭게 생기기도 하며 쓸수록 점점 강해진다. 결정적 뇌 발달 시기라는 것은 있을 수 있어도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며 뇌의 성장이나 변화가 멈추는 일은, 스스로 결정하지 않는 이상 있을 수 없다.(122쪽)

우리는 스스로에게 완전히 새로운 경험이 되고 영감을 주는 것을 소비하기로 결정할 수 있다. 예전에 보지 못했던 위대한 사람들의 그림을 보고, 음악을 듣고, 새로운 스포츠를 배우고, 춤을 익히고, 세계적 석학의 글들을 보고, 고전 인문학을 읽고, 평생 해본 적 없는 악기를 배우며. 가죽공예 모임에 나가고, 시를 써 볼 수도 있다. 물론 취향과 관심에 따라 학습은 개인마다 천차만별이며 그 범위는 우주와 같이 무한하다.

이것이 곧 의식을 사용하는 것이다. 의식의 작동은 자유롭다. 건강하고 건전한 것이라면 어떠한 다양성의 학습을 취하든 그건 자유이기 때문이다. 새로운 것을 2차 의식에 넣는 만큼 우리의 진짜 의식은 강화된다. 나의 정체성이 훨씬 더 명확하게 확립된다. 내가 원하는 삶을 살 수 있다.(125~126쪽)

학습을 꼭 딱딱한 공부와 연관 지어 머리 아파하며 미리 포기할 필요가 전혀 없다. 몸을 움직이는 것과 관련한 학습이든 정신 활동을 하는 학습이든, 이 둘이 결합된 학습이든, 여행, 언어, 운동, 악기, 원예, 제빵, 커피, 독서, 캘리그래피, 인테리어, 춤, 영상편집, 글쓰기 등 이 모든 것이 학습이 된다. 나이와 관계없이 우리는 이런 학습 활동에 돈과 의식을 소비해야 한다.(127쪽)

상상의 꿈 조각과 학습 조각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꿈이 하나라면 아주 거대하다는 얘기인데, 그걸 이루려면 수십 년은 걸릴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꿈을 포기하거나 꾸지 않게 된다. 거대한 목표는 그것대로 두되 여러 조각의 다양한 꿈들을 세워보자. 여러 조각의 학습하기를 세우고 작은 목표들을 자주 달성하는 것이 삶에 활력과 에너지를 준다,(128쪽)

 

6) 창조의 조각

창조할 때 우리의 의식은 거대하고 장엄한 폭포를 만든다. 창조는 없는 것을 탄생시키는 고도의 작업이다. 일반적으로 창조라고 하면 예술가부터 떠올린다. 그러나 예술이라는 것은 광범위한 의미이고, 창조는 다른 다양한 활동에도 적용되는 단어다. 또한 기존에 있던 것을 새로운 시각에서 재탄생시키는 것도 창조다. 익숙한 여러 것의 새로운 조합도 창조다. 요즘 시대는 재편집의 시대이기도 하므로.

세계적인 창조가도 모두 처음에는 기존 것을 학습하는 데서 출발하여 자기 것을 만들어 내는 데 성공했다. 위대한 인물이 된 사람들은 모두 그 이전의 위대했던 사람들의 사상과 결과물들을 학습했고 그로부터 생각하여 창조한 사람들이다. 꿈을 상상하고 계획하고 학습하고 있다면, 이 삶에 집중하고 있다면, 내가 원하는 방향대로 새로 조합하고 결합할 수 있다.(128~129쪽)

창조의 의식 조각은 자신의 호기심과 끈기를 통해 2차 의식을 사용하여 만들어진 결과물이다. 자신이 현실로 만들어 내고자 하는 크고 작은 꿈과 목표를 세우게 되는 시발점은 호기심이다. 나는 과연 누구인가에 대한 호기심이고, 내가 지금 갖지 못하고 이루지 못한 것을 현실로 이루어내기 위한 호기심이며, 현실로 나타났을 때 어떤 이미지일지에 대한, 이 모든 호기심이다.

어른이 된 우리는 호기심을 억누르고 산다. 이것을 발동시켜 창조의 의식을 통해 형상화 작업을 해야 한다. 형상화(Imaging)란 내 마음 속에 이미지를 떠올리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여러 형태로 표출하는 것이다. 상상의 의식 조각은 상상만 했다. 계획의 의식 조각은 계획만 짰다. 그러나 창조의 의식 조각은 그것을 현실화해야 한다. 그 현실화의 형태는 글일 수도, 그림일 수도, 사진일 수도, 말일 수도, 어떤 작품일 수도, 음악일 수도, 논문일 수도, 동작일 수도, 공식일 수도, 내 집일 수도, 혹은 내 몸, 내 마음, 내 정신 자체일 수도 있다.(132~133쪽)

각자 자신의 인생을 창조적으로 살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 자신의 꿈을 현실로 이루는 데 지극히 영감을 주고 자극이 될 만한 것에 집중해야 한다. 영감과 자극이 되는 것은 자신의 꿈이 무엇이냐에 따라 달라진다. 영화를 보는 것으로, 고전을 읽는 것으로, 여행을 가는 것으로, 미술관을 방문하는 것으로, 그림을 그리는 것으로, 뮤지컬을 보러 다니는 것으로, 다큐멘터리를 찾아보는 것으로, 스쿠버다이버 자격증을 따서 물속 세계를 탐험하는 것으로, 위대한 음악을 듣는 것으로, 문학과 과학이 결합된 소설을 읽는 것 등으로 영감과 자극의 재료들은 다 다르다. 모두의 꿈이 다른 것처럼 말이다.(134~135쪽)

 

큰 성공을 거두고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력을 미치며 세상을 이롭게 한 위대한 사람들, 혹은 천재로 보이는 사람들은 모두 ‘2차 의식’을 평생에 걸쳐 강력하게 사용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자기 자신을 잘 알고 있으며 행복해한다. 항상 남들이 넘볼 수 없는 큰 포부를 갖고 있다. 보통 사람들에게는 야망으로도 보이고 헛된 꿈으로 생각되기도 하지만, 실제 그 사람들은 놀라운 발견을 한다.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할 만한 변화를 만든다. 없던 것을 만들기도 한다. 그들은 항상 새로운 것을 찾아다니는 모험가들이다. 우리는 모두 의식을 사용함으로써 내 인생의 모험가가 되어야 한다.

감각을 소비하는 것은 나의 감각 만족을 극대화하기 위한 소비이고, 감각을 더 쓰고 키우는 소비 행위다. 그리고 이것은 즉각적이지만 순간적이다. 나를 성장시키지는 못한다. 내 삶을 변화시키는 것도 아니다. 그야말로 쾌락 소비다. 이와는 다르게 의식을 활용하는 것은 나의 의식 에너지를 쓰는 것이다. 궁극적으로 내 의식이 전환되고 확장되고 강화할 수 있도록 돕는다. 의식은 감각을 포용한다. 감각 소비를 뛰어넘는다. 완전히 새로운 사고다. 한 번도 접하지 못한 새로운 정보와 지식과 경험이다. 의식은 결국 나를 향상시킨다. 시간이 지나면 훨씬 더 나은 내가 되어 있게 한다.(135~13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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