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제2의 인생에서 행복 찾기

kdy820 2022. 5. 15. 20:38

넷플릭스에서 영화 ‘인턴’을 봤다. 전화번호부 회사에서 40년을 근무한 벤(로버트 드 니로)은 퇴직 후 공허한 마음을 견딜 수 없었다. 그러던 중 우연히 ‘고령 인턴 채용’에 지원하여 30세에 CEO가 된 줄스(앤 헤서웨이)의 회사에 취업한다.

70세의 벤은 젊은 직원의 어려움을 해결해주고, 마사지사인 피오나(르네 루소)와 새로 사귀고, 줄스의 가정일을 돕고 회사 업무에 조언하는 역할을 하며 제2의 인생을 행복하게 살아간다.

제2의 인생은 평생 다니던 직장에서 퇴직하고 나면 곧바로 시작된다. 50대 후반이나 60대 초반이다. 평균수명이 늘어난 탓에 새로운 인생을 살아야 할 기간도 자연히 늘어났다. 인생 후반기를 성공적으로 살기 위해서는 퇴직 전에 새로운 인생을 미리 설계하라고 하지만 그게 말처럼 쉬운가. 집과 직장을 오가다 보면 어느새 퇴직이고 여생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걱정이 앞선다.

사람은 모두 행복하게 살기를 원한다. 행복에 대한 정의는 다양하지만, 간단히 말하면 ‘사랑하는 사람과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사는 것이 행복’이라고 할 수 있다. 제2의 인생도 ‘인생’인지라 새롭게 인생을 시작하는 사람들도 인생 후반기를 행복하게 보내고 싶을 것이다.

나와 비슷한 시기에 퇴직한 친구들을 보면 인생 후반기의 모습이 각양각색이다. 평소 동경했던 전원생활을 하기 위해 귀촌, 귀농하는 친구들이 있고, 자영업을 시작하는 친구들도 있다. 방과후학교나 수련원, 예절 학교 등에서 강사로 활동하기도 한다. 색소폰, 하모니카 등의 악기 연주에 특기를 가진 친구들은 경로당 등을 방문하여 봉사활동을 하기도 하고, 학교에서 정년퇴직한 경우에는 기간제 교사를 하는 경우가 많다. 모두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경우다.

나는 도서관에서 사서로 일하고 싶어서 퇴직하자마자 곧바로 계명대학교 사서교육원에 등록하였다. 일주일에 3일간 오후 6시부터 9시 또는 9시 50분까지 수업을 받고, 중간고사와 기말고사를 치렀다. 다음 해 7월에 사서교육원을 수료하고 2급 정사서 자격증을 받았다. 나는 고령자 취업이나, 노인 일자리 사업으로 도서관에도 인턴 자리가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오산이었다. 비정규직 사서는커녕 사서 알바직도 구할 수 없었다.

일자리가 없다고 마냥 놀면서 20년 혹은 30년을 보낼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별다른 준비 없이 할 수 있는 일은 기간제교사였다. 짧게는 며칠, 길게는 몇 개월간 학교를 옮겨 다니면서 기간제교사로 근무했다.

처음 기간제교사로 나갔을 때는 젊은 교사들과 교류하면서 내 나름대로의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런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다. 게다가 2020년부터 코로나 팬데믹이 시작되어 학급에서만 지내는 경우가 많아졌다. 그래도 교육전문직, 교감, 교장으로 지내면서 15여 년간 하지 않던 수업을 할 수 있어서 무척 행복하였다.

기간제교사는 만 65세가 되는 학기 말까지만 허용된다. 2021년 9월부터는 기간제교사를 할 수 없게 되었다. 도서관 사서로 근무하기 위해 채용 공고를 살피던 때가 생각났다. 도서관 직원으로 근무할 수 없다면 내가 도서관을 만들면 된다고 생각하였다.

작은도서관 설립 요건은 간단하다. 33제곱미터 이상의 공간, 1,000권 이상의 책, 6석 이상의 열람석이면 된다. 마침 고향 마을의 새마을회관 2층이 비어 있었다. 2년간 임대하기로 하고 1년치 임대료를 지급했다.

평소 모아둔 책이 있어서 도서관을 개관하는 데 별다른 어려움은 없었다. 2021년 11월 1일 ‘장서산책작은도서관’을 개관했다. 나는 도서관장으로 평생 근무할 수 있게 되었다. 도서관을 운영하면서, 책을 읽지 않는 사람이 대부분이지만 도서관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오늘도 나는 도서관에 간다. 아무도 찾지 않는 도서관에서 웹툰을 보고, 책을 읽고, 아내가 싸준 도시락을 먹고, 글을 쓴다. 가끔씩 시골집에 들러서 우편물을 확인하고 마당을 쓸기도 한다. 내가 자란 고향의 과수원길을 걸으며 길가에 핀 야생화를 살피고, 시원한 바람을 맞이하고, 파란 하늘을 떠다니는 구름이 되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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