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산책

패터슨

kdy820 2023. 3. 30. 13:33

 

1. 개요

짐 자무시의 2016년 독일, 미국, 프랑스 합작 영화로 애덤 드라이버가 주연을 맡았다. 미국 뉴저지 주의 소도시 ‘패터슨’에 사는 버스 운전사 패터슨은 일주일 내내 비슷한 일상을 보낸다. 아침에 시리얼을 먹고 출근하여 버스를 운전하고, 아내가 정성껏 싸준 도시락으로 점심을 먹는다. 버스운전 일을 마치면 아내와 저녁식사 후 반려견과 산책 겸해서 동네 바에 들러 맥주 한 잔으로 하루를 마무리한다. 그리고 틈틈이 일상의 기록들을 비밀 노트에 시로 써내려 간다. 2016년 칸 영화제 경쟁부문 진출작이다.  

 

2. 줄거리

<월요일>
운전기사로 일하는 패터슨은 6시 10분에 아내의 얼굴을 마주보며 일어나 잠이 든 아내를 본다. 잠이 깬 아내는 쌍둥이 아이가 생겼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그는 자신의 일상 기록을 자신만의 비밀 노트에 시로 적는다. 그날도 어김없이 아침에 콘프레이크를 먹으면서 식탁에 있는 성냥을 보고 시를 쓰기 시작한다.
패터슨은 매일을 걸어서 출근하고 운전을 하기 전에 잠깐 시를 적으며 점심에는 폭포수 아래에 앉아 부인이 싸준 도시락을 먹으면서 시를 적어 내려간다. 퇴근을 할 때면 우편함에 편지가 있는지를 확인하고 부인과 저녁을 먹은 후 애완견 마빈을 데리고 산책하면서 동네 바에 간다. 마빈을 묶어둔 뒤 술 한 잔을 하고 그곳에서 우연히 쌍둥이인 친구를 만나며 하루를 마무리한다.
<화요일>
6시 15분에 일어난 패터슨은 성냥에 대한 시를 적으며 하루를 시작한다. 패터슨은 운전을 하면서 손님들의 대화를 듣고, 집에 돌아와 서재에선 시를 계속 적는다. 아내는 시를 출간해보자고 권유하면서 주말에는 꼭 복사본을 만들라고 얘기하지만 패터슨은 부끄러워 한다. 그리고 산책을 나간 뒤 동네 바에서 맥주 한 잔을 한다.
<수요일>
6시 10분에 일어난 패터슨은 또다른 공간에 대한 시를 적기 시작한다. 운전을 하다 지나가는 쌍둥이 아이들을 보게 되고 아내는 커튼에 그림을 그리며 기타를 주문한다. 패터슨은 늘 그렇듯 산책을 나간 뒤 동네 바에서 술 한잔을 하며 사람들을 둘러본다.
<목요일>
아내에게 백허그를 한 상태로 일어나 자신의 버스에 탄 쌍둥이 아기들을 보며 아내에 대한 이야기를 시로 쓴다. 퇴근을 한 후 집에 가던 길, 길에 혼자 있는 여자아이를 발견해 엄마가 올 때까지 기다린다. 여자 아이도 시를 써서 그녀가 쓴 시를 듣던 그때 아이의 엄마가 다가오는데 그 여자아이도 쌍둥이였다. 집에 온 패터슨은 아내의 맛없는 파이를 맛있게 먹어주고 동네 바로 향한다. 아내는 휴대폰과 아이패드, 노트북을 가졌으나 그는 휴대폰이 없다.
<금요일>
평소와 다르게 아내가 먼저 일어났다. 다음날 장터에서 팔기 위해 컵 케이크를 만드는 중이던 것. 패터슨은 버스 운전에 관한 시를 적는다. 하지만 버스가 운행 중에 멈춰서고, 그는 승객의 휴대폰을 빌려 회사에 알린다. 그리고 집에 와서 아내의 기타와 노래를 듣고, 또 동네 바로 향한다. 그곳에서 남자가 여자에게 총을 겨눈 것을 보고 놀라 달려들어 빼앗아 들지만 그것은 장난감이었다.
<토요일>
컵케이크 파는 날. 평소와 다르게 패터슨을 아내가 깨워주며 하루를 시작한다. 아내가 컵케이크를 판매하는 걸 도와주고, 그 돈으로 같이 외식과 영화를 본 뒤 집으로 돌아온다. 하지만 마빈이 이미 비밀 노트를 갈갈이 물어 뜯어버린 상태, 부끄러워서 복사해두지도 않았기에 그동안 써온 시들을 모조리 잃어버리게 된다.
<일요일>
패터슨은 도저히 잠을 이룰 수 없어 평소보다 일찍 일어난다. 아내는 미안한 마음에 조금 더 자라고 하지만, 패터슨은 괜찮다고 아내를 다독인 후 지하실로 내려온다. 거기서 윌리엄 카를로스 윌리엄스의 초기 시 작품집을 바라보다 차고에 있던 마빈을 마루로 데려와 마빈을 마주 보며 “네가 매우 미워, 마빈.”이라고 말한다. 아내와 대화를 하다 산책할 겸 나온 패터슨은 에버랫을 만난다. 폭포 앞에 앉아있던 패터슨은 일본인 시인을 만나 시에 대해 대화를 나누고 새로운 빈 노트를 선물받는다. 남자는 텅 빈 페이지가 가장 많은 가능성을 보여준다고 말하고는 자리를 뜬다. 그리고 패터슨은 폭포를 바라보며 다시 시를 쓰기 시작한다.
<월요일>
패터슨의 일상은 또 평화로이 시작되며 영화는 끝난다.

 

3. 평가

영화의 주인공 패터슨은 미국 뉴저지주의 소도시 패터슨에 산다. 패터슨은 패터슨시 출신 시인 윌리엄 카를로스 윌리엄스의 시를 좋아한다. 버스 드라이버인 패터슨을 영화배우 애덤 드라이버가 연기한다. 이러한 반복이 이 영화에서는 중요하다. 반복이 패턴을 만들고, 패턴이 패터슨의 일상을 견딜 만한 것으로 만든다. 패턴은 일상의 행동에 작은 전구를 일정한 간격으로 달아놓는 일이기에, 삶은 패턴으로 인해 조금이나마 빛나게 된다. 이 반복과 패턴이 자아내는 아름다움과 리듬은 뭔가 지금 제대로 작동 중이라는 암묵적인 신호를 보낸다. 그 규칙적으로 작동하는 세계 속에서 당신도 무엇인가를 하고 있다는 신호를 전해온다. 그 신호에 반응하는 마음이야말로 일상의 어둠에서 인간을 잠시 구원할 것이다. 자기 안에서 무엇인가 정처 없이 무너져내릴 때, 졸렬함과 조바심이 인간을 갉아먹을 때, 목표 없는 분노를 통제하지 못할 때, 자기 확신이 그만 무너져내릴 때, 인간을 좀 더 버티게 해줄 것이다.

그러기에 패터슨은, 아침 6시 조금 넘어 일어나, 시리얼로 아침을 먹고, 옷을 입고, 출근하고, 근무하고, 퇴근하고, 동네 바에 들러 한잔한다. 돌아와 집안일을 하고, 씻고, 잠자리에 든다. 그 일상은 영화 내내 반복된다. 흔히 영화라고 하면, 대개 이러한 일상 활동 끝에 발생하는 극적인 일이나 과잉된 감정을 다루기 마련이지만, <패터슨>은 일상의 반복 그 자체를 다룬다. 그 반복되는 일상은 어떤 절정으로도 시청자를 인도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 일상은 조용히 진행되는 예식처럼 잔잔히 아름답기에, 시청자는 몰입해서 영화를 볼 수 있다. 일상에의 몰입감, 그것이 이 영화의 정체다.

패터슨에게 그나마 특별한 점이 있다면, 시를 쓴다는 사실이 아닐까. 그는 일정한 시간에 비밀 노트를 펼치고 자신의 시를 적는다. 출판을 염두에 두고 쓰는 것이 아니므로, 복사본을 만들어놓지도 않는다. 그래도 그에게 시 쓰기는 중요하다. 인세를 받고 문학상을 탈 수 있기에 중요한 것이 아니라, 정돈된 일과 속에 고요한 시간의 자리를 남기는 일이기에 중요하다. 

<패터슨>에 그나마 극적인 사건이 있다면, 반려견이 패터슨의 비밀 시 노트를 갈가리 찢어버렸다는 것이다. 바로 그날 밤 패터슨은 잠을 잘 이루지 못한다. 일찍 깬  패터슨은 그래도 하루를 다시 시작한다. 평소에 시를 쓰던 벤치에 망연히 앉아 있노라니, 누군가 다가와 빈 노트를 건넨다. 새 노트를 받아든 패터슨은 다시 쓰기 시작한다. 패터슨의 표현에 따르면, 자신이 쓰는 시란 결국 물 위의 낱말일 뿐이다.

나에게도 패터슨처럼 정해진 일상이 있다. 오래도록 이 일상을 지속할 수 있기를 바란다. 목표를 달성할 수 없어 오는 초조함도, 목표를 달성했기에 오는허탈감도 없이, 지속할 수 있기를 바란다. 물처럼 흐르는 시간 속에 사라질 내 삶의 시를 쓸 수 있기를 바란다.(김영민, 인생의 허무를 어떻게 할 것인가, 96~9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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