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학교가는 길

kdy820 2013. 5. 12. 14:31

학교 가는 길

   

“어머니 학교 다녀오겠습니다. 아버지 학교 다녀오겠습니다.”

아침마다 출근할 때 부모님이 계시는 방문을 열고 인사를 한다. 아버지는 귀가 어둡기 때문에 어머니보다 더 큰 소리로 인사해야 한다.

내가 사는 아파트에서 3분 가량 걸어서 공항교 교각 밑으로 내려오면 금호강 산책로를 걸을 수 있다. 4대강 사업으로 강정고령보에서 영천 자연별공원까지 금호강 둔치 70km에 자전거 종주길과 산책로가 조성되었다. 내가 걷는 길은 공항교에서 아양교까지 1.7km 구간에 불과하지만 워낙 길이 잘 닦여져 있어서 걸을 때마다 기분이 상쾌하다.

이른 아침이어서 가끔 운동하는 사람과 자전거를 탄 사람이 지나갈 뿐 산책로는 나 혼자 걷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길을 걸으면서 아침 해를 보고 심호흡을 하기도 하고, 강물 위에서 헤엄치는 오리떼를 보기도 한다. 동촌보에서 폭포처럼 떨어지는 물줄기와, 강 건너 아파트 등 주위를 둘러보며 걸으면 전혀 지루하지 않다.

자전거길과 산책로 중간에 남천이 심어진 작은 화단이 계속 이어지고, 금호강으로 흘러 들어가는 소하천을 건널 수 있도록 아치형 다리가 두 군데 놓여져 있다. 작은 공원과 체육시설, 자전거 보관소, 주차장이 있어서 주변 도로에서 산책로와 자전거 길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재작년에 지금 근무하는 학교로 이동하고 나서 처음에는 승용차를 운전하여 다녔다. 학교가 도심지에 위치하고 있어서 집에서 학교까지 거리가 8km에 불과한데도 통근하는 시간은 30분 넘게 걸렸다. 혼잡한 도로와 많은 신호등을 거쳐야 했다.

일단 학교에 출근하면 운동할 시간이 없었다. 퇴근 후에 금호강 둔치길을 산책하기도 하였지만, 저녁을 먹은 후 피곤해서 졸거나, 날씨가 춥다, 바람이 분다, 비가 내린다는 이런저런 이유로 산책을 하지 못하는 날이 많았다. 작년 11월말부터 시골에 계시던 부모님이 우리 집에서 함께 지내게 된 뒤로는 시간을 내기가 더 어려웠다.

이렇게 운동 부족인 상태로 지내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올해 1월 2일부터 출근하는 방법을 바꾸기로 하였다. 승용차 대신 지하철로 출퇴근하기로 하고, 집에서 가까운 지하철역까지 걸어가기로 한 것이다.

우리 집에서 가장 가까운 지하철역은 큰고개역이다. 큰고개역까지 가려면 버스가 다니는 간선도로와 많은 차들이 다니는 큰 도로를 걸어가야 한다. 차량 오가는 소리 때문에 조용히 걸을 수 없었고, 매연이 심해서 크게 숨쉬는 것조차 힘들었다.

일주일 쯤 다니다가 조금 멀기는 하지만 아양교역에서 지하철을 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 걷던 날 산책로가 너무 잘 조성되어 있어서 앞으로 계속 이 길로 다녀야겠다고 생각하였다.

 

지금은 폐쇄된 대구선 아양철교를 지나고, 팔공산을 본뜬 커다란 아치형 조형물이 있는 아양교 남단까지 걸어가면 지하철역으로 갈 수 있는 갈림길이 시작된다. 금호강 좌안제를 올라가는 오르막길이다. 20분 정도 부지런히 걸었기 때문에 이 길을 올라갈 때는 조금 힘이 든다.

아양교역 입구에서 지하 4층까지 돌계단을 계속 내려가면 지하철 승강장이 나온다. 내가 타는 지하철은 대구도시철도 1호선 대곡행 열차이다. 출근 시간대에는 5분 간격으로 운행된다.

대구의 지하철은 모두 6호차까지 편성되어 있다. 승강장 바닥에 승차위치가 표시되어 있다. 반월당에서 2호선으로 갈아타야 하기 때문에 이동하는 거리가 가장 짧은 6-4칸에서 열차를 탄다.

출근 시간이기 때문에 빈자리는 찾을 수 없다. 경로석은 비어 있는 경우가 많지만, 아직 앉을 수 있는 나이가 아니어서 그냥 출입구 근처에 서서 손잡이를 잡는다.

차 안을 둘러보면 젊은 사람들은 대부분 스마트폰 화면을 보고 있고, 나이 든 사람들은 눈을 감고 있다. 책을 읽는 사람은 몇 명에 불과하다. 이야기 소리는 전혀 들리지 않는다. 안내 방송만 들릴 뿐이다. 중요한 역은 우리말, 영어, 중국어, 일본어 안내 방송이 차례로 나온다.

큰고개, 동대구역, 신천, 칠성시장, 대구역을 지나고, 중앙로역에서 출발하면 곧 대구도시철도 로고송이 나온다.

“우리 경제 웃음 간직한 대구도시철도”

승객들은 이 로고송이 나오면 벌써 출입구 쪽으로 와서 줄을 서기 시작한다.

반월당에 열차가 멈추면 엄청나게 많은 승객들이 내린다. 그리고 내리자마자 뛰거나 빠른 걸음으로 걷는 사람들이 많다. 2호선으로 갈아타는 사람들이다. 영남대 방면 열차를 타기 위해서는 뛰어야 하고, 문양 방면 열차를 타기 위해서는 아주 빠른 걸음으로 걸어야 한다. 직장인의 출근 시간 1분은 대단히 중요하다. 곧바로 2호선으로 바꾸어 타지 못하면 5분을 더 기다려야 한다.

문양행 열차를 타기 위해 승차위치마다 긴 줄을 서서 기다린다. 2-3, 2-4, 3-1칸은 바닥에 ‘타고 내리는 승객이 많은 칸입니다. 옆 칸을 이용하시면 편리합니다.’ 라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열차가 도착하면 타고 내리는 승객들로 승강장이 가득 찬다.

도시철도 1, 2호선에서 갈아 탈 수 있는 역은 오직 반월당역 한 곳 뿐이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타고, 내리고, 이동하기 때문에 ‘10년 전 중앙로에서 난 지하철 참사가 반월당에서 다시 일어난다면 어떻게 될까?’라는 생각만으로도 몸서리가 처진다.

2호선은 두 정거장만 이용한다. 서문시장을 지나 반고개역에서 내린다. 아양교에서 반고개까지 지하철을 타는 시간은 20분 정도이다.

반고개역을 빠져나오면 반고개네거리다. 맞은 편에서 안전지킴이 선생님이 노란 깃발을 들고 교통지도를 하고 있다. 횡단보도를 건너면서 인사를 한다.

반고개네거리에서 내당네거리까지 3분 정도 걸어간다. 등교하는 학생들이 나를 보고 인사를 한다.

“안녕하십니까? 행복한 하루 되십시오.”

“안녕, 안녕!”

나도 인사를 한다.

내당네거리는 반고개네거리보다 더 복잡하다. 차량들이 꼬리물기를 해서 횡단보도에도 줄지어 서있다. 학생들이 차량 사이로 요리조리 걸어서 빠져 나가야 한다.

학교에 부임하고부터 아침마다 내당네거리에서 10분 정도 교통지도를 하고 있다. 어떤 날은 녹색어머니가 교통지도를 하러 나오지 않아서 내가 대신 교통지도를 해야 안심할 수 있었다.

교통지도를 하면서 우리 학교 학생들이 등교하는 모습과 표정을 자연스럽게 살펴본다. 학교에서 친구들을 만나고 새로운 것을 배운다는 기대와 함께 밝은 표정으로 등교하는 학생들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잠을 제대로 못 잤는지, 아니면 아침부터 꾸중을 들었는지 억지로 걷거나 시무룩한 표정으로 등교하는 학생들도 있다.

어머니와 함께 등교하는 학생들이 해가 갈수록 많아진다. 1학년은 어머니와 함께 다니는 것이 당연하지만 4학년인데도 어머니와 함께 등교하는 학생이 있다. 어머니들이 너무 과잉보호 하고 있다.

가장 늦게 길을 건너는 학생은 정해져 있다. 그러면서도 표정은 태평스럽다. 아주 느긋한 성격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학생은 8시 30분에 울리는 아침자습 종에 맞추어 학교 정문을 들어설 것이다.

 

교통지도를 마치고 정문으로 가는 길을 들어서면 더 많은 학생들이 인사를 한다. 정문 주변 문구점에서 학습 준비물을 사는 학생들도 있고, 자녀를 학교까지 데려다 주고 집으로 돌아가는 학부모도 있다. 출근하는 선생님들이 탄 승용차가 조심스럽게 지나간다. 정문을 지나 본관 건물까지 걸어가서 교장실에 들어서면 학교 가는 길이 끝난다. 또 하루가 시작된다.(2013.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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