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서 리뷰

노모포비아 스마트폰이 없는 공포

kdy820 2020. 6. 12. 20:49

 

스마트폰 사용이 가져오는 부정적 영향에 대해 고찰한 사회학 일반서이다. 저자인 만프레드 슈피처(Manfred Spitzer)는 독일 뇌과학계의 일인자이다. 프라이부르크대학교에서 의학, 심리학 및 철학을 전공했고 정신병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울름대학교 정신병원장이자 신경과학과 학습 전이센터 원장이다.

책의 제목인 노모포비아(Nomophobia)는 케임브리지 사전이 선정한 ‘2018년 올해의 단어’로, 노 모바일폰 포비아(No mobile-phone phobia)의 줄임말이다. 이는 스마트폰이 없을 때 초조해하거나 불안감을 느끼는 증상을 뜻한다.

이 책은 머리말과 15장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저자는 각 장의 마지막에서 그 장에서 논의한 것을 짧게 정리하여 독자들의 이해를 돕고 있다.

 

제1장 스마트폰이 만든 전염병

스마트폰의 사용은 수백만 명을 조사한 많은 과학적 연구 결과들이 보여주듯 우리의 건강, 교육, 사회에 심각한 해를 끼친다. 심지어 이에 그치지 않고 우리의 민주주의적 토대까지 위협한다.

스마트폰은 사람들의 감정과 의견뿐 아니라 선거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또한 진실보다 더 빨리, 더 멀리, 더 깊게 확산되는 가짜뉴스와 세계 곳곳에서 이루어지는 의견의 극단화는 비록 의도한 것이 아닐지라도 디지털 기업들의 사업 모델에서 비롯된 것이 틀림없다.

지금껏 스마트폰에 대해서는 기술 영향 평가가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다. 대신 유례없는 규모로 광고의 무차별적인 폭격에 시달리고 있어, 이 문제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여전히 사회적 논의의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아이들의 건강과 교육을 비롯해 민주주의적 토대까지 세계에서 가장 돈 많은 기업들의 영리 추구에 무비판적으로 방치하는 것은 무책임하기 이를 데 없는 행동이다.

 

제2장 새로운 팬데믹, 근시

근시는 눈의 발달 시기인 아동기와 청소년기에 멀리 보는 일이 너무 적어서 생긴다. 오늘날 어린이와 청소년들은 야외보다 실내에서 보내는 시간이 훨씬 많고, 게다가 주로 디지털 미디어와 접촉하며 지낸다.

그 기기들 가운데 아이들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것이 스마트폰이다. 이 기기는 디지털 미디어들 가운데 가장 화면이 작기 때문에 눈에 가장 가까이 대고 봐야 한다. 그 결과는 분명하다. 이미 오래 전에 전염병의 수준에 도달한 근시의 증가가 그것이다.

우리가 지금까지의 형태를 바꾸지 않는다면 늦어도 30년 뒤에는 이 전염병이 대유행병으로 바뀔 것이다. 지금의 추세로는 그때쯤이면 세계 인구의 절반이 근시에 걸릴 거라는 말이다.

세계에서 스마트폰을 가장 많이 생산하고 청소년들이 이 기기를 가장 많이 사용하는 한국에서는 벌써 어린 친구들의 90퍼센트 이상이 근시를 앓고 있다. 유럽도 최근 30퍼센트에 이르렀다.

지금으로선 아동기와 청소년기에 야외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스마트폰과의 접촉 시간을 대폭 줄이는 것이 최선의 대책으로 보인다.

 

제3장 사고의 방해꾼

스마트폰은 단순히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인지 능력을 침해한다. 정신병리학에서 ‘사고 장애’라고 부르는 현상이다. 스마트폰에 의존적일수록 장애는 더 커진다. 이 물건을 그냥 꺼두거나 화면을 바닥에 뒤집어놓는 것도 별 도움이 안된다. 아예 다른 방에 갖다 놓는 것이 좋다. 그것도 자발적으로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불안이 생겨난다.

집중해서 할 일이 있거나, 타인과 편안하게 대화를 나누고 싶은 사람이라면 어린 학생이건 최고 경영자이건 할 것 없이 스마트폰과 공간적으로 떨어지는 시간을 스스로 만들어내야 한다.

 

제4장 부모의 스마트폰 사용법

매일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장면이 있다. 아이들은 모래놀이를 하거나, 미끄럼틀을 타거나, 음식을 먹거나, 아니면 유모차에 가만히 앉아있고, 엄마나 아빠는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는 장면이다. 부모와 아이는 공간적으로 무척 가까이 있지만 정서적으로는 멀리 떨어져 있다.

디지털 미디어는 아이들 스스로 너무 과도하게 사용할 때만 발달을 저해하는 것이 아니라 부모가 자신의 역할을 제대로 해야 할 상황에서 오히려 디지털미디어를 사용할 때도 아이들의 발달을 해친다. 미국 부모들은 하루에 평균 디지털 미디어를 9시간 22분 사용한다. 그중 가장 비중이 높은 것은 단연 스마트폰이다. 그것도 주로 여가 시간에 스마트폰을 사용하기에 아이들의 추가 피해는 불을 보듯 뻔하다.

 

제5장 자연의 상실

영국과 미국의 과학자들이 1900년부터 2000년까지 매년 영어권 문헌들(주로 소설)에 실린 자연 관련 단어들의 빈도수를 백분율 형태로 조사한 결과 전 기간에 걸쳐 자연 관련 단어들의 사용과 연도 사이에 뚜렷한 마이너스의 상관관계가 확인됐다. 즉 100년 동안 자연 관련 단어들은 점점 적게 사용됐고, 특히 꽃의 경우가 가장 두드러졌다. 반면에 인공적인 생산물을 가리키는 단어들은 플러스 상관관계로 뚜렷한 증가세를 보였다.

1950년대엔 TV가, 1970년대엔 비디오게임이, 1990년대 중반부터 인터넷이 여가 공간으로서 자연을 대체했다. 그 때문에 문화 생산자와 소비자에게 자연의 의미는 감소할 수밖에 없었다.

자연에 대한 문화적 관심의 감소는 자연이 우리의 정신적 담론에서 충분히 관심을 받을 만하다는 메시지의 약화를 의미한다. 또한 호기심을 일깨우고, 자연의 가치를 인정하는 법을 배우고, 자연에 경외심을 보낼 기회의 상실을 의미하기도 한다. 결국 자연과의 육체적 접촉의 상실은 문화생산물(소설, 노래가사, 영화 등)을 통한 자연과의 접촉 상실로 이어지고, 그것이 다시 자연에 대한 관심과 애정의 감소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제6장 교육 Ver 0.0

학교에서 스마트폰을 지급하면 학생들의 성적은 떨어지고. 스마트폰을 금지하면 성적은 올라간다. 이 결과는 학교에서 컴퓨터가 끼치는 영향에 대해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 일치한다. 학교에서 컴퓨터를 사용하게 하면 성적이 좋아지는 학생은 아무도 없을 뿐 아니라 하위권 학생들은 오히려 성적이 한층 더 나빠진다.

스마트폰은 아이들의 건강과 교육을 해치고, 의지 형성과 공감 능력의 발달을 방해한다. 교육과 의지 형성, 공감은 우리 사회를 떠받치는 세 개의 기둥이다. 교육이 없다면 우리는 어떻게 스스로 사고하고 판단하는 법을 배울까? 의지 형성이 없다면 우리는 어떻게 투표하러 갈 수 있을까? 공감이 없다면 어떻게 사회적 연대가 가능할까? 우리는 유치원과 학교의 디지털화가 교육을 더욱 위험에 빠뜨린다는 사실을 안다.

프랑스에서는 학교에서의 스마트폰 사용을 금지했다. 독일 바이에른 주에서도 금지하기는 했지만, 시종일관 엄격하게 시행하는 프랑스와는 달리 바이에른 당국자들은 호시탐탐 이 조치를 완화할 기회를 엿보고 있다.

한국은 세계에서 디지털 인프라가 최상으로 구축되어 있고, 스마트폰을 가장 많이 생산하는 나라다. 한국의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추산에 따르면 10~19세 아이들 중에서 스마트폰 중독자는 30퍼센트가 넘는다고 한다. 그래서 2015년 5월부터 세계 최초로 19세 이하의 스마트폰 사용을 제한하고 통제하는 법이 만들어졌다. 또한 포르노와 폭력물 접속을 차단하고, 아이들의 스마트폰 사용 시간을 관리하고, ‘자살’, ‘임신’, ‘따돌림’ 같은 특정 단어가 스마트폰에 입력되자마자 부모에게 알려주는 소프트웨어도 사용되고 있다. 그뿐 아니다. 스마트폰 일일 사용 시간(한국 아이들의 하루 스마트폰 사용 시간은 평균 5.4시간이다)이 일정 한도를 넘어서면 부모에게 통보되기도 한다.

 

제7장 소통되지 않는 우울

스마트폰이 우리에게 행복을 가져다줄 거라는 세간의 주장과는 달리 연구 결과들은 정반대 결과를 보여준다. 스마트폰은 삶의 질을 떨어뜨리고, 우리를 불행에 빠뜨리고, 지속적으로 우울하게 만들고, 심지어 목숨을 끊을 위험을 높인다. 이는 미국의 최신 과학적 연구 결과로서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다. 게다가 현대에 들어 우울증은 가장 흔한 질병이 됐고, 젊은 친구들에게도 그 발병 가능성이 뚜렷이 증가하고 있다는 사실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스마트폰과 무수히 늘어난 건강 앱을 우울증에 대한 대응책으로 활용한 시도들은 지금껏 무참히 실패하였다. 이런 상황을 고려하면 페이스북 대표가 자사의 선진적인 서비스로 사용자들의 자살을 막겠다며 EU의 정보보호기본법 완화를 요구하는 것은 정말 뻔뻔한 소리가 아닐 수 없다. 우리는 그것을 허용해선 안된다. 그들의 어떤 논리에도 흔들려선 안된다.

 

제8장 나 혼자 산다

싱글화는 개인에게든 사회에든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 트랜드에 대한 다양한 객관적인 연구 결과와 새로운 고민들로 이 상황을 바꾸는 토대가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전염병학과 환경 의학이 이전에 개인뿐 아니라 사회에 많은 이득을 안겨준 것처럼 오늘날의 신경정신학도 ‘사회적 뇌’에 대한 인식으로 우리 사회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고 공동체 안에서만 진정으로 행복할 수 있다. 디지털 미디어, 그 중에서도 스마트폰은 우리를 하나로 연결시켜 주기보다 오히려 갈라놓을 때가 많다. 이 점을 우리는 좀 더 깊이 고민해야 한다.

 

제9장 유령 진동 증후군

요즘은 스마트폰 사용자의 3분의 2가 스마트폰이 실제로 울리지 않았는데도 벨소리가 들리는 환청을 경험한다. 게다가 ‘유령 진동’을 느꼈다는 사람도 27.4퍼센트에서 80퍼센트에 이른다.

이런 현상에 큰 의미를 부여하고 싶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유령 진동 역시 스마트폰의 과도한 사용이 부른 증후군이다. 여러 연구에 따르면 미국인은 하루에 46번에서 150번까지 스마트폰을 들여다본다고 한다. 깨어 있는 시간을 하루 16시간으로 치면 ‘20분마다 한 번씩’ 또는 ‘6분마다 한 번씩’ 스마트폰을 확인하는 셈이다.

지금까지의 연구로 많은 사람이 유령 진동을 경험한 것으로 확인됐지만, 그것을 크게 불편하게 여기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유령 진동 현상이 여전히 진지한 연구 영역으로 진입하지 못한 것도 그 때문일지 모른다.

그러나 스마트폰의 급격한 확산과 위험 및 부작용을 고려하면 유령 진동도 확대경으로 좀 더 정밀하게 들여다볼 날이 머지않아 보인다. 그렇다면 이 증후군은, 다시 말해 유령 진동의 병적 현상은 몇 년전 페이스북 우울증이나 스마트폰 사고 장애, 또는 정신의학적 관점에서의 디지털 치매 같은 심각한 장애의 경고 신호일 수 있다.

 

제10장 증강 현실의 명과 암

‘포켓몬 Go’는 2016년 7월에 출시된 스마트폰 무료 게임으로 몇 주 만에 전 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누렸다. 이 게임과 함께 증강 현실의 원칙이 처음으로 폭넓게 확산됐다. 실제 현실 속의 관광지, 랜드 마크, 특이한 대상들이 게임 세계의 배경으로 이용되고, 게임 세계의 작은 몬스터들이 실제 현실에 나타난다.

이것은 지금껏 시도된 적이 없었던 스마트폰의 여러 가지 기능의 조합으로 가능해졌다. 예를 들어 위성 내비게이션, 카메라, 나침반, 위치 센서, 인터넷 접속이 동시적으로 이루어지면서 카메라의 위치와 방향에 따라 자동으로 정보가 호출되고, 이 정보들 덕분에 화면의 실제 배경 속에서 가상의 작은 몬스터들이 눈에 보이게 된다.

포켓몬 GO 게임에는 긍정적 작용은 없지만, 부작용은 아주 뚜렷하다. 게임이 출시된 지 며칠 지나지 않아 <워싱턴포스트>는 포켓몬 Go 게임자들의 부주의로 인한 골절 사고를 보도했다. 의학 전문지에서도 포켓몬 Go 게임으로 인한 사고와 폭력 행위, 다른 안 좋은 효과들에 대한 보고가 이어졌다.

포켓몬을 뒤쫒다가 교통사고를 당하고, 전봇대와 부딪히기도 하고, 남의 집 마당으로 들어가기도 한다. 주변의 경고 표지판을 보지 못해 낭떠러지나 절벽에서 떨어지기도 한다.

포켓몬 Go 게임이 사람들을 자연 속에서 활동하게 하고 많이 걷게 하여 건강을 촉진하는 수단으로 선전된다면 보건 당국이 이를 허용해서는 안된다. 이유는 분명하다. 첫째는 육체적 건강 효과가 크지 않을 뿐 아니라 그조차도 시간이 지나면 빠르게 감소하기 때문이고, 둘째는 막대한 부작용 때문이다.

포켓몬 Go 게임처럼 기술적으로 가능하고 경제적으로 이득이 된다고 해서 무엇이건 어린이와 청소년에게 마음대로 풀어놓아서는 안된다. 게임을 만드는 사람들은 아직 자신에게 무엇이 좋고 나쁜지 스스로 결정할 수 없는 아이들에게 책임감을 느껴야 한다. 건강과 교육, 사회적 행동을 해치는 게임은 특히 그것이 미래 세대와 관련된 것이라면 마땅히 거부해야 한다.

 

제11장 탈진실

가짜뉴스는 거대 인터넷 기업들의 사업모델이다. 구글, 페이스북, 트위터는 광고로 먹고 살고, 광고는 사람들의 관심을 필요로 하고, 관심은 다시 예상 밖이거나 이례적으로 보이는 뉴스로 쉽게 생성된다.

예를 들어 ‘교황이 임신했다’라는 뉴스는 두말할 필요 없이 터무니없지만, 이 제목을 본 사람은 궁금한 마음에 기사를 클릭하고, 그와 함께 누군가의 금고 속으로 돈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가짜뉴스는 공장 식으로 대량 생산되어 빠른 속도로 유포된다. 돈이 걸려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오늘날의 세상은 일상의 디지털화로 과거 어느 때보다 더 빠르게 변하고 있기 때문에 가짜뉴스를 찾아 그 정체를 밝히는 일은 점점 힘들어지고 있다.

이젠 거짓말로 돈을 벌고 권력을 차지하는 일을 막을 시간이 됐다.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된 지 몇 개월 지나지 않아 <사이언스>나 <네이처> 같은 전문지에 진실을 지켜 달라고, 필요하다면 진실을 위해 끝까지 싸워달라는 호소가 실린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우리에게는 두 가지 차원에서 계몽이 필요하다. 첫째 우리는 거짓 그 자체를 폭로해야 한다. 둘째 우리 문화와 사회의 건강을 이루는 계몽사상에 대해 좀 더 많은 존중심을 가져야 한다. 계몽은 모든 개인에게 자신의 경험과 사고를 사용해서 진실한 것과 아름다운 것과 선한 것을 깨달으라고 요구한다. 구글링이 아니라 자신의 힘으로 말이다. 이제 우리는 ‘탈진실’이라는 말을 통해 지적 몰락의 위기를 인지하게 됐다. 이를 잊으면 위기는 언제든 현실이 될 수 있다.

 

제12장 파괴적 혁신의 약육강식

애플과 애플의 상품인 그래픽 사용자 인터페이스, 아이패드, 아이폰은 파괴적 혁신의 긍정적 보기로 자주 거론된다. 이 상품들을 보면 새로운 것이 낡은 것을 허물어뜨리는 것이 얼마나 훌륭하고 추구할 만한 일인지 똑똑히 알 수 있다. 그렇다면 파괴에 무게중심을 두어야 한다. 특히 자기 자신이 파괴되지 않으려면 말이다. ‘파괴할 것인가, 파괴될 것인가?’ 이것이 이제 경영자들의 새로운 화두로 떠올랐다.

파괴적 혁신의 문제에서 핵심은 디지털 정보 기술과 그것이 사회와 경제, 개인에게 미치는 파장이다. 과거에 이 파장은 장밋빛 일색으로 그려졌다. ‘디지털 혁명’이 우리에게 혁신과 성장, 일자리, 부, 행복을 가져다주리라는 것이다. 그것도 가까운 미래에 말이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지난 15년간의 경제 자료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디지털화가 이루어진 서구 선진국에서는 국내 총생산량과 생산성, 임금이 1980년대와 1990년대에 비해 아주 조금만 성장한 반면에 실업자 수는 장기적으로 늘어난 것을 알 수 있다.

인간의 역사에서 사람들을 조종하는데 불안을 이용한 사례는 아주 많다. 아주 대표적인 예가 불안으로 나라를 다스린 독재자들이다. 그런데 잘 알려져 있듯이 세계에서 가장 큰 IT 기업의 수장들도 그런 부류에 속한다. 파괴적 혁신을 주창하는 사람들은 이윤이라는 음험한 이유에서 세상에 불안의 씨앗을 뿌린다. 자신들이 만든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 또는 상품 아이디어를 팔아먹기 위해서다.

예로부터 경제적 변혁은 늘 승자와 패자를 낳았다. 하지만 파괴적 혁신이라는 말로 막대한 이익을 얻은 IT 기업만큼 뻔뻔한 승자는 없었다. 그들은 불안을 퍼뜨리고, 불안은 이성적 사고를 마비시키고 인간 사회의 공존과 신뢰를 망가뜨린다. 남는 건 광고 목적으로 연출된 속임수와 떠들썩함, 표면적 열광, 거짓으로 꾸민 행복이다.

 

제13장 디지털 시대의 생존

디지털과 단절되는 것에 대한 사람들의 불안을 이용해 디지털화를 무비판적으로 밀고 나가는 것은 결코 인간 사회에 도움이 안 된다. 어떤 혁신이든 그에 따른 바람직한 영향과 위험 및 부작용을 저울에 올려놓고 정확히 잴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디지털화부터 먼저 하고, 나중에 그것이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따지겠다는 것은 일단 약부터 팔고 나중에 그게 환자에게 좋은지 나쁜지 판단하겠다는 것과 같다. 냉정하게 말하면 부작용에 대한 불안도 좋지 않다. 그런 불안감에 매몰된 환자는 애초에 약을 먹지 않아 피해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부작용 없는 작용은 없다. 그렇다면 이 두 측면, 즉 긍정적 측면과 부정적 측면을 명확하게 밝히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제14장 세계적 IT 기업의 수익 모델

유튜브와 페이스북, 트위터 같은 거대 인터넷 기업들의 사업 모델은 전 세계적으로 극단주의, 가짜뉴스 유포, 개인 정보 탐지, 정치적 조작을 체계적이고 자동적으로 강화한다. 문제는 인터넷이나 스마트폰이 아니라 그 뒤에 도사린 사업 모델, 즉 ‘이 모든 게 공짜’라고 주장하는 사업 모델이다.

이제 우리는 이 모델을 계속 허용해야 할지, 허용하고 싶은지, 허용해도 괜찮은지 깊이 고민할 시점에 왔다. 진실과 자유, 사생활, 우리의 시간, 민주 사회가 정말 가치 있는 것이라면 이 사업 모델은 바뀌어야 한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겉으론 공짜 같지만, 우리는 사회적으로 너무 비싼 대가를 치르고 있다. 이런 상황은 반드시 바뀌어야 한다.

 

제15장 왜 IQ는 점점 떨어지는가?

지난 세기 선진국에서는 인간들이 점점 똑똑해졌다. 그런데 이 효과는 새천년 전환기부터 뒷걸음치고 있다. 1만 번 넘게 측정된 IQ 검사에 의하면 최소한 13개 선진국에서는 지능이 감소하고 있다. 이 추세는 너무나 뚜렷해서 단순히 측정 오류나 다른 통계학적 허위 효과를 폄훼할 수 없게 됐다.

지능 지수 1포인트는 돈으로 환산하면 한 인간의 평생 소득에서 대략 18,000유로에 해당한다. 인간이 평생 45년 동안 일한다고 가정하면 지능 지수 1포인트가 매년 벌어다 주는 돈은 400유로다. 역 플린 효과가 약 10억명(유럽과 미국, 일본의 인구를 합친 숫자)에게 미친다고 한다면 이는 매년 4,000억 유로의 경제적 손실을 부른다. 여기엔 지능 저하가 건강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 및 그에 따른 비용을 고려하지 않았다. 이제는 정말 진지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나는 스마트폰에서 나오는 전자파가 인체에 해롭다는 정도는 알고 있었지만, 그 외의 부정적 영향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했다. 그런데 이 책을 읽고 나서 자세히 알게 되었다.

저자는 스마트폰 사용으로 부정적 영향을 받고 있는 대표적인 국가로 한국을 들고 있다. 한국의 청소년 90%가 근시이고, 30%가 스마트폰 중독이라는 내용은 충격적이었다. 스마트폰으로 인해 학생들의 성적이 내려가고, 자연에서 멀어지고, 인간관계가 더 힘들어지고, 우울증이 심해지고, 혼자 지내는 사람들이 더 많아진다는 사실도 믿어지지 않는다.

퇴직 후에는 스마트폰에 의존하는 시간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가까운 곳에 스마트폰이 없으면 불안하고, 자주 유령 진동을 느낀다. 혼자 있을 때는 유튜브에 올라오는 영상을 보고,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을 보면서 시간을 보낸다.

스마트폰에 중독되기 전에 사용 시간을 줄여나가야겠다. 일정한 시간만 모바일 데이터를 켜고, 시간을 정해서 메시지를 확인해야겠다. 저녁에는 아예 전원을 꺼두어야겠다. 자연을 가까이 하면서 느리게 사는 지혜를 배워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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