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붕우무신(朋友無信)

kdy820 2022. 1. 26. 07:56

초등학교에 다닐 때부터 친구의 소중함과 우정의 중요성에 대하여 많이 배웠다. 죽마고우(竹馬故友), 관포지교(管鮑之交) 등의 사자성어도 있지만 가장 많이 들은 말은 ‘붕우유신(朋友有信)’이었다. 친구 사이에는 믿음이 있어야 한다.

나는 시골에서 4학년까지 다니다가 5학년 때 대구로 전학했다. 나이 들어 동기회를 찾게 되었을 때, 두 군데 초등학교에서 다 회원으로 받아주었다. 검정고시 출신으로 고등학교 친구가 없는 내게 초등학교 동기들은 무척 소중한 친구들이었다.

2022년 1월 19일에 내가 졸업한 초등학교 친구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곤충표본을 40개 정도 가지고 있는데 모교에 기증할 수 있는지 알아봐달라는 전화였다. 그 친구가 곤충표본을 촬영한 동영상을 카톡으로 보냈는데, 내가 처음 보는 곤충들이 많았다. 그라실리코르니스 오각뿔장수풍뎅이, 모우호티 멋쟁이사슴벌레, 악테온 코끼리장수풍뎅이, 오리엔탈리스 골리아투스 대왕꽃무지, 넓적 사슴벌레, 아르말라투스 장수하늘소 등 이름도 생소한 곤충들이 대부분이었다.

10여 년 전에 모교의 교장을 지냈지만, 정년퇴임한 지 3년이 지난 뒤여서 현재 교장은 누구인지 알지 못했다. 학교 홈페이지를 통해 교장 선생님의 성함을 알아내고 행정실을 경유하여 전화를 했다. 동기 박○○이 곤충표본을 기증하고 싶어한다는 말과 동영상을 보내고, 수증 여부를 알려달라고 했다. 교장 선생님은 부장 선생님들이 출근하면 의사를 물어보고 전화하겠다고 했다. 동기에게 전화로 교장 선생님께 연락했다는 말과 기증 여부를 결정할 때까지 기다려달라고 했다.

1월 25일에 교장 선생님이 보낸 문자 메시지를 받았다. “교장선생님, 안녕하세요? 본교 부장들에게 보내주신 곤충표본영상을 보여줬더니 학생들이 좋아하고 관심 있어 할 것 같다며 기증하신다면 받아도 좋을 것 같다고 합니다. 학생들이 많이 볼 수 있는 곳을 선정하여 어떻게 전시할 것인지는 좀 더 고민해보고 관리 방법도 기증하신 분께 배워야 할 것 같습니다. □□초 ○○○ 올림”

문자를 보자마자 동기 박○○에게 카톡을 보냈다. “□□ 교장이 곤충표본 기증받겠다고 하는데, 언제, 어떻게 전달할지 전화로 알아보기 바란다. 교장 선생님 휴대폰은 010-○○○○-○○○○, 교장실 전화는 053-○○○-○○○○번이다. 교장실로 먼저 전화해보고 안 받으면 휴대폰으로 전화하면 될 것 같다.” (오전 11:33)

그런데 박○○이 보낸 카톡은 내가 전혀 생각하지 못한 말이었다. “연락이 하도 업서 칭구야 우리손주 ○○초등학교 담임선생님이 교육자료 하면 되겠따 하기에 손주 반에 기증했따~~~ 빨리 연락주었으면 조았는데~ 미안해요 김교장님~ 건강하셔요~ 박○○동기~~~!” (오후 4:16)

황당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카톡을 보자마자 교장 선생님께 전화했다. ‘기증을 문의했던 친구가 손주가 다니는 초등학교 담임선생님께 기증했다’는 것과 ‘기증을 하지 못해 미안하다’고 했다.

오후 8시 23분에 친구에게 전화했다. 그 친구는 전화를 받더니, “마누라가 전시된 곤충표본을 빨리 치우라고 해서 ○○초등학교에 기증했다. 교장선생님도 좋아하시더라. 조금 있다가 다시 전화할게.” 그리고는 전화를 끊었다. 넷플릭스에서 영화 두 편을 보면서 친구의 전화를 기다렸으나 자정이 될 때까지 전화가 오지 않았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친구들과의 모임도 줄어들었고, 마주 보고 이야기하기도 어려워졌다. 그런데 전화도 있고, 메시지도 있고, 카톡도 있다. 일을 부탁할 때는 친구를 찾고, 그 일을 자기 마음대로 처리하고는 아무런 연락도 하지 않는다. 이런 사람을 친구라고 할 수 있는가? 소중하다고 생각했던 초등학교 친구를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붕우유신’이 아니라 ‘붕우무신(朋友無信)’이다. 친구 사이에도 믿음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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