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발명에 대한 단상

kdy820 2022. 6. 19. 21:25

기간제 교사를 하는 동안 학생과학발명품을 출품해야 하는 일이 일어났다. 생각지도 못한 일이다. 과학에 대한 관심과 소양이 부족한 데도 끝까지 벗어날 수 없는 관련 업무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과학부장은 4월에 과학의 달 행사를 해야 한다. 학생과학발명품경진대회와 과학전람회가 중심 행사인데, 학교마다 의무적으로 1편 이상 교육지원청에 제출해야 한다. 학생과학발명품은 1학년부터 6학년까지 학생 중 발명에 관심 있는 학생이 만든 발명품을 교내대회를 거쳐 기한 내에 출품해야 한다.

학생들의 발명품이야 뻔한 것들이다. 우산 끝에 바퀴를 달아 끌고 다닌다거나, 책가방이 스스로 따라오게 한다는 것 등이다. 쓸만한 발명품은 발명에 관심이 많은 학부모나, 담임교사가 학생을 대신해서 만들어 학생 이름으로 출품한다.

C초등학교에서 4학년 담임을 할 때 ‘연필깎기가 달린 쓰레기통’을 만들어 준 적이 있고, K초등학교에서 과학 업무를 맡았을 때는 ‘페트병을 활용한 우산보관대’를 만들었다. 연필깎기가 달린 쓰레기통은 학교에서 수상하는데 그쳤지만, 우산보관대는 교육지원청에서 은상을 받고 시교육청에 출품했다. 얼마 되지 않는 발명품 제작 지원비도 받았다.

S초등학교에서 6개월의 기간제교사로 근무할 때였다. 1학기 담임을 맡은 6학년 학생 P가 학생과학발명품 제작 계획서에 따라 제작한 발명품을 가져오겠다 하였다. 코로나가 한창인 때라 ‘토론 마스크’를 제작했다는 것이다. 일반 마스크는 말을 많이 하면 아래쪽으로 흘러내리는 경향이 있다. ‘토론 마스크’는 일반 마스크의 가운데 부분을 도려내고 주름이 더 많은 마스크를 부착하여 만든 것이었다. 일반 마스크를 네 겹으로 접은 직사각형 모양이라고 한다면, ‘토론 마스크’는 일반 마스크 가운데를 직사각형으로 잘라내고 6겹으로 접은 마스크를 부착한 형태이다. 그렇게 하면 말을 많이 해도 마스크가 흘러내리지 않는다고 하였다. 과학부장은 P의 발명품을 교육지원청에 제출한다고 하였다.

그날 오후에 P의 아버지가 전화를 했다. P가 제출하기로 한 마스크와 똑같은 형태의 마스크를 S중학교에 다니는 P의 오빠도 제출하기로 결정되었다는 것이다. 학교급이 다른 발명품경진대회에 오빠와 여동생이 똑같은 발명품을 내면 두 편 다 심사 대상에서 제외된다. 교육지원청에서 심사할 때 어느 한쪽이 표절한 것으로 판단하기 때문이다. P의 아버지는 오빠와 여동생 중 누구 것을 제출해야 할 것인지 물었다. 같은 발명품이면 학교급이 낮을수록 유리하니, P가 출품하는 것이 낫겠다고 대답했다.

다음 날 P의 아버지는 둘 다 출품하기로 했다고 하였다. 오빠와 여동생의 자존감을 똑같이 높여주기 위해서라고 했다. 발명품이 누구의 아이디어인지 말하지 않는 것으로 보아 아버지가 아이디어를 낸 것 같았다. P의 발명품은 학교에서 최우수상을 받는데 그쳤다.

발명의 중요성은 누구도 부인하지 않는다. 초등학교에서부터 학생과 학부모를 대상으로 하여 발명교실을 운영하고, 학생 대상의 발명영재학급도 운영한다. 학생과학발명품경진대회를 해마다 개최하고 교사가 참가하는 발명품경진대회도 있다.

발명품경진대회는 과학고등학교 출신이거나 대학에서 과학 관련 학과를 전공했거나, 과학 동아리 활동, 과학 심화 활동을 한 교사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한 대회이다. 일반교사는 의무적으로 참가하는 데 따르는 불편함과 고통이 심하다. 개선이 필요한 교육활동이다.

과학업무를 맡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만들었던 우산보관대는 지금도 우리집 베란다에 자리잡고 있다. 페트병 앞부분을 자르고 가운데 부분을 연결하여 4단으로 만들었다. 3단 우산, 2단 우산, 일반 우산, 대형 우산을 각각 5개씩 보관할 수 있다. 내 인생 최고의 발명품이다.

 

'수필' 카테고리의 다른 글

길 위의 인생(2)  (1) 2022.07.10
시골집  (1) 2022.07.04
책을 보관하는 가장 좋은 방법  (1) 2022.06.19
단풍나무를 옮긴 벌  (0) 2022.05.22
식자우환(識字憂患)  (1) 2022.05.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