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신발 일곱 켤레

kdy820 2011. 5. 9. 11:37

신발 일곱 켤레



  내가 어렸을 때는 검정고무신 한 켤레를 몇 년 동안이나 신고 다녔다. 학교에 갈 때나, 친구들과 놀 때나, 소를 먹이러 갈 때나 오직 검정고무신 한 켤레만 신었다. 자동차 타이어로 만들었다는 통고무신이어서 무척 질겼다. 오래 신어서 바닥이 닳은 고무신은 걸을 때는 괜찮지만 달리기할 때는 미끄러웠다. 그래서 운동회 때, 상급 학년 형들은 신발을 벗고 맨발로 운동장을 달렸고, 하급생인 우리들도 형들을 보고 맨발로 운동장을 달렸다.

  

  초등학교 5학년 때 대구로 전학 오면서부터 운동화를 신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러나 교실이나 복도에서는 실내화를 신지 않고 다녔다. 내가 다니던 초등학교는 무척 역사가 깊은 학교여서 마루바닥으로 된 복도가 매끄럽지 못하고 거칠었다. 다니면서 몇 번이나 나무 가시에 찔려 양호실에 갔고, 한참동안 절룩거리며 다녔다. 흰색 실내화만 신었어도 괜찮았을 텐데... ...


  1971년 가을에 고등학교를 그만 두고 고향에서 농사를 지을 때는 다시 고무신을 신었고, 17살 한창 때여서 그런지 한겨울에도 양말을 신지 않았다. 양말을 신으면 왠지 답답하여 맨발로 고무신을 신고 온 산과 들판을 헤매어 다니곤 하였다. 맨발로 다니던 버릇 때문에 곤란을 겪었던 때는 1975년 교대 입학식 때였다. 마룻바닥으로 된 강당에서 입학식을 하는 동안 나는 맨발로 서 있었는데, 3월초라 바닥이 무척 차가왔고, 한참 서 있으니 발이 시리기 시작했다. 주위를 둘러보니 모두 양말을 신고 있고, 나 혼자만 맨발로 서 있는 게 아닌가. 부끄럽기 보다는 입학식이 빨리 끝나기만을 기다려야 했다.


  대학생이 되었다고 1학년 때부터 구두를 신고 다니는 친구들도 몇 명 있었지만, 나는 대부분의 교대생처럼 운동화를 신었다. 구두를 처음 신은 것은 2학년이 되어서였다. 강의실에서 같은 반에 있던 여학생 중 하나가 “대영씨가 구두를 신었어요.”라고 말해서, 모두 축하한다면서 박수를 쳐주었다. 불편하게만 여겨졌던 구두도 얼마간 신고 다니자 익숙해졌다.


  지금 내가 근무하는 사무실 바닥에는 내 신발이 네 켤레나 있다. 구두, 실내화, 지압 실내화, 걷기용 운동화이다. 구두는 출퇴근 때나 결재를 받을 때, 실내화는 실내 계단이나 복도를 통행할 때, 지압 실내화는 사무실에 앉아 근무할 때, 걷기용 운동화는 점심과 저녁 식사 후 사무실 주위를 산책할 때 신는다. 옆 자리에 앉은 동료는 신발이 너무 많아 헷갈리겠다고 하였다.


  원래는 구두와 실내화만 있었다. 지압 실내화는 사무실에 물건을 팔러 온 신발장수에게서 가격(1만원)이 부담이 되지 않아 구입하였다. 처음 신었을 때는 발바닥이 아팠으나, 며칠간 지나서부터는 견딜 수 있게 되었다. 의자에 오래 앉아 있으면 허리가 아팠는데 이 실내화를 신고부터는 아프지 않았다.  그러나 싼 가격에 구입한 불량품이어서 그런지 복도를 걸을 때는 떨거덕거리는 소리가 많이 났다. 그래서 사무실 안에서만 신기로 하였다.


  걷기용 신발(워킹 슈즈)은 맞춤형 복지비로 구입한 외국산(MBT)으로 34만원이라는 비싼 가격에 구입하였다. 밑창이 타원형으로 되어 있어서 서 있기만 하여도 운동 효과가 있다고 하였다. 처음에는 금호강을 산책할 때 신었는데, 며칠간은 머리가 어지럽고, 나중에는 허리가 아팠다. 다른 사람에게는 어떤지 몰라도 내게는 장시간 걷는 데 적당하지 않는 것 같아서 한 달 가량 신다가 그만 두었다. 그런데 비싼 돈을 주고 구입한 신발을 마냥 신발장 속에 둘 수가 없어서 점심과 저녁 식사 후 사무실 주위를 산책할 때 구두 대신 신기로 하였다.       


  나는 밤 9시에 퇴근하는 데, 퇴근하면서 바로 집으로 가지 않고  한 시간 가량 금호강둑을 산책한다. 공항교 밑에 차를 세워두고 트렁크에 들어있는  두 가지 운동화와 등산화 중에서 한 켤레를 꺼내 신고는 아양교까지 걸어갔다 온다. 이때는 대개 운동화를 신는다. 등산화는 주말에 대구 주변의 산에 등산갈 때 신는다.  


  집에는 신발이 너무 많아서 신발장이 넘친다. 식구 넷이 신는 신발이 수십 켤레다. 요즈음 신발은 디자인도 좋지만, 무척 질기다. 신발이 다 닿을 때까지 신는 경우는 거의 없다. 멀쩡한 신발을 두고 새로 사면서, 다음에 신는다고 넣어둔 신발이 겹겹이 쌓여 있다. 구두가 가장 많고, 운동화, 등산화순으로 종류도 다양하다. 아내와 딸이 신는 부츠도 있다.     


  내가 가진 신발을 보면서, 옛날 검정고무신 한 켤레로 몇 년을 신던 시절을 생각한다. 용도에 맞춰 신발을 신고부터 발을 보호하고, 예의를 갖출 수 있게 되었지만, 그만큼 생활이 복잡해졌다. 신발 한 켤레로 지내던 시절이 마음은 더 편안하였다. 그 때의 생활은 단순하고 걱정이 없어서 행복한 유년 생활을 보냈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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