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싸움의 역사

kdy820 2011. 5. 9. 11:42

싸움의 역사

 

어릴 때 어른들로부터 자주 들은 말은 ‘젊잖다’와 ‘어리석다’였다. ‘젊잖다’는 말은 마음에 들었지만, ‘어리석다’는 말에는 동의할 수 없었다. 내 나름대로 똑똑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서 어른들이 나를 제대로 봤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싸움할 때가 그러하였다.

 

동네에 친척 형이 있었다. 나이는 나보다 다섯 살 쯤 많았지만 학교에 늦게 입학하여 내가 1학년 때 형은 4학년이었다. 그 형은 나를 꼬드겨서 같은 학년이나 한 학년 위의 아이들과 싸움 붙이는 것을 좋아하였다.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갈 때 윗마을에 사는 아이를 가리키면서

“야, 니는 저 아이 하고 싸워서 이길 수 있겠나?”

하고 묻는다. 다른 아이들에 비해 키가 좀 더 크고, 살이 쪘던 나는 그 아이를 살펴보고는

“응.”

하고 대답한다. 그러면 그 형은 윗동네 아이에게 가서 나에게 했던 말과 같은 말을 하거나, 그 아이가 2학년인 경우에는

“야, 봐라. 쟤는 1학년인데, 너한테 이긴단다. 한번 붙어볼래?“

하면 된다.

싸움이라고 해야 별게 없었다. 그냥 달려가서 상대를 힘으로 눕히고 주먹으로 얼굴을 몇 대 때리면 밑에 깔린 아이가 울고, 형들이 말리면 끝이 났다. 형들은 내가 싸울 때 응원하면서 구경하다가 이기면 싸움을 잘한다고 칭찬을 해서 다음에 또 다른 아이들과 싸우도록 용기를 북돋워주었다.

나는 몇 번 싸우고 나서 점점 자신이 생겼다. 2학년 때는 4학년하고 싸워도 이길 것 같았다. 친구들과 같이 하교하면서 솔메기에서 다니는 키가 좀 작은 형과 싸워보고 싶었다. 그래도 4학년이라 약간은 자신이 없어서 친구 2명에게 내가 먼저 싸우다가 ‘공모해라‘고 하면 셋이서 같이 싸우기로 약속하였다,

싸움을 걸어서 막상 붙어보니 힘이 턱도 없이 모자랐다. 밑에 깔려 맞으면서

“공모해라!”

하고 소리쳤지만 두 친구는 그냥 보고 있기만 하였다. 나는 형편없이 맞고 나서 항복하였다. 그 후로는 싸움에 자신이 없어졌고, 또 학년이 올라가면서 철이 들어서 싸우지 않았다.

5학년 때 대구로 전학가서 작은아버지 책장에서 찾은 삼국지를 읽었는데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있었다. 싸움을 잘하는 관우나 장비가, 싸움도 못하고 나이도 적은 제갈공명의 명령을 따른다는 것이었다. 그 후에 읽은 수호지에서도, 양산박 호걸들이 송강의 지휘를 받는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힘세고 싸움 잘하는 사람이 최고라고 생각하던 때여서, 소설 속의 이야기를 믿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막연하게 어떤 다른 이유가 있겠지 하며 의문을 가진 채 책을 읽었다.

 

중학교에 다닐 때도 싸움 잘하는 친구가 제일 멋있게 보였다. 그런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도 저렇게 싸움을 잘 했으면 얼마나 좋을까 부러워하였다.

중학교 2학년 때, 학교에서 배우는 유도는 실제 싸움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아서 태권도를 배워야겠다고 생각하였다. 누나를 졸라 집 근처에 있는 태권도장에 등록하였다.

도장에 처음 간 날, 곧 검은 띠를 맨다는 붉은 띠 키 큰 형이 관장님의 명령을 받고 나에게 기초적인 동작을 가르쳐 주었다. 그런데 검은 띠를 맨 키 작은 형이 오더니 옳게 가르치지 못한다고 했고, 붉은 띠는 나도 곧 초단인데 웬 간섭이냐고 대들어서 자기들끼리 티격태격거리기 시작하였다. 관장님이 싸우지 말라고 하는데도 계속 서로 눈을 부라리면서 양보하지 않았다. 보다 못한 관장님이 한 사람씩 불러서 사정없이 발길질을 하였다. 관장님에게 맞고 난 뒤 두 사람은 조용히 있는 것 같았다.

그 날, 연습을 마치고 골목길을 나오는데 붉은 띠와 검은 띠 두 사람이 막 싸움을 시작하고 있었다. 그런데 내 생각과는 달리 덩치가 큰 붉은 띠가 체구가 작은 검은 띠에게 형편없이 맞고 있었다. 검은 띠는 공중을 날아다니면서 발길질을 하는데 붉은 띠는 엉거주춤 방어도 제대로 못하고 있었다. 붉은 띠가 졌다고 항복하고 다음부터 형님이라 부르겠다고 한 뒤 골목길을 빠져나갔다. 검은 띠는 구경을 하는 나를 보고

“열심히 해라!”

하고 어깨를 두 번 치고 갔다.

나도 열심히 연습해서 검은 띠처럼 되고 싶었지만 대련 시간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맞는 일 뿐이었다. 같은 학년 장환이라는 아이와 대련을 자주 하였는데 장환이의 발길질에 채이기 일쑤였고, 나는 한 대도 때리지 못하였다. 맨날 맞으면서 방어 연습을 하고 있다고 스스로 위로하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일의 전부였다. 맞기만 하니까 태권도에 점점 흥미를 잃게 되었다. 일주일 동안 두들겨 맞다가 결국 태권도를 그만 두고 말았다.

 

고등학교를 그만 두고 집에서 농사를 지을 때였다. 친구 2명과 하양장에 낚시도구를 사러 간 적이 있었다. 나는 낚시를 좋아하지 않았지만 친구들이 낚시 갈 때 혼자 놀 수 없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이었다. 낚시도구를 사서 나오는데 뒤에서

“야, 빨리 비켜!”

라는 소리가 들렸다. 내가,

“누고?”

하면서 뒤로 돌아봤는데, 스포츠 머리를 한 키가 크고 살찐 청년이

“어, 이 자식이 반항하네, 너희들 모두 따라와!”

하면서 우리를 근처에 있는 하양교회 마당으로 데리고 갔다. 그리고는 키가 가장 큰 나를 보더니

“야, 너 몇 년생이야?”

하고 물었다.

나는 실제보다 나이를 두 살 쯤 올려서 20살이라고 속이기로 하고, 56년에다 2년을 보태어서

“58년생인데요.”

라고 대답하였다. 그랬더니

“뭐, 16살 밖에 안 되는 놈이 나에게 대들어?”

하면서, 오른쪽 주먹으로 내 왼쪽 옆구리를 때리기 시작하였다. 나이 계산을 잘못했다는 것을 알았지만 더 이상 나이를 올릴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왼쪽 갈빗대 밑을 계속 맞으면서,

“아버지가 출생신고를 늦게 해서 그런데요.”

라고 변명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겁에 질린 친구들은 맞고 있는 나를 바라보기만 하였다. 그 청년은 나에게 훈계를 하면서 계속 주먹질을 하더니,

“앞으로 조심해!”

하고 가버렸다.

그 때 집중적으로 맞은 왼쪽 옆구리는 오랫동안 나를 괴롭혔다. 늑막을 다쳤는지 숨을 깊이 쉬면 뜨끔거렸고, 바로 누워서 한참 자면 옆구리가 당겨서 옆으로 누워야 했다. 처음에는 복수하겠다고 다짐했지만, 날이 갈수록 복수에 대한 의지가 사라져갔다.

 

그 해 여름에, 혼자 자전거를 타고 가는데, 낯선 청년 5명이 나를 붙잡더니,

“야, 너 이용삼이를 알아?”

하고 물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이용삼이란 사람은 6촌 누나와 결혼한 자형이었다. 나는 그 때 자형의 이름을 모르고 있었다. 내가

“잘 모르는데... ...”

하니까,

“같은 마을에 살면서 용삼이도 몰라?”

하고 내 머리를 한 대 치고는 길을 내려갔다. 별다른 이유 없이 맞고 나니까 화가 났다. 나는 저 앞쪽에서 걸어가고 있는 청년들을 향해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 머리를 때린 청년의 종아리를 자전거 앞 타이어로 받았다. 그리고 자전거에서 내려서 주먹을 날렸다. 갑자기 자전거에 받혀 깜짝 놀란 청년은 곧 정신을 차리고 내 멱살을 잡더니 땅바닥에 내동댕이쳤다. 정신없이 맞았다. 청년들이 가고 난 뒤에 일어나 보니까 오른쪽 눈썹 끝부분이 까져서 피가 흐르고, 멱살 잡힌 목은 벌겋게 부어 있었다. 아버지가 깜짝 놀라 이런 일은 참고 있으면 사람을 얕본다면서 병원에서 2주 진단서를 받아 고소하였다. 파출소에서 진술서를 쓰고 나왔다. 나중에, 윗마을에 사는 상용이 형이 그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고생했다는 말을 하였다. 나를 때린 계전동 청년들의 부모가 아버지에게 사과하고, 아버지는 고소를 취하했다는 것이다.

 

두 번이나 맞고 난 후에 중학교 때 태권도를 제대로 배우지 않은 것을 후회하였다. 혼자 연습을 해서라고 태권도를 잘해야겠다고 생각하고 대한태권도협회에서 나온 태권도 교본 품세편을 구입하였다. 1974년 7월 14일이었다. 사진을 보면서 팔괘 1장부터 연습을 하고 주먹지르기, 발차기 등도 시간 있는 대로 하였다. 몇 가지 품세를 익히고 돌려차기, 두발 당상, 뛰어 옆차기 등 발차기도 제법 능숙하게 할 수 있었다. 나는 혼자 태권도를 배운 것을 아주 자랑스럽게 생각하였다. 교대에 들어간 뒤 군사훈련 쉬는 시간에 느티나무 밑에서 뛰어 옆차기 등을 하였다. 세계 태권도 공인 5단인 병준이가 아주 잘한다면서 어디서 배웠느냐고 물었다. 나는 혼자 배웠다고 했지만 내 실력을 알아주는 것 같아 어깨가 으쓱거렸다.

 

그러나 실제 싸움에서 태권도 실력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는 거의 없었다. 나이가 들면서 싸울 기회가 줄어들었고, 상대가 싸움을 걸어올 때도 피하는 것이 더 현명하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내가 겪은 마지막 싸움은 1991년 11월 어느 날 평리동에서 일어났다. 모임에서 술을 마시고 12시가 다되어 집으로 왔는데, 무언가 잃어버린 것이 있는 것 같아 다시 내려와 차 안을 보았으나 찾는 물건이 없었다. 나는

“씨발, 없네.”

하고 차문을 닫았는데, 2층 당구장에서 일하는 청년이 계단을 내려오다가,

“야, 왜 내게 욕하느냐?”

하였다. 나는

“내가 언제 욕했는데?”

“금방 씨발이라고 했잖아?”

“내가 언제 그랬냐, 이 새끼야.”

술김에 화가 나서 그 청년에게 달려들었다. 계단에서 우당탕거리다가 청년과 함께 화장실 앞에 쓰러졌다. 나를 따라 내려온 아내와 당구장 사람들이 말려서 싸움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왔다.

다음 날 아침, 침대에서 일어나려니 허리가 아파서 일어날 수가 없었다. 어제 저녁에 청년과 싸우다 엉덩방아를 찧은 것이 원인이었다. 아내가 처형에게 전화해서 손위 동서가 왔다. 동서에게 업혀서 4층에서 1층까지 내려왔다. 신암동에 있는 대구정형외과에 갔더니, 요추 5번이 찌그러졌다면서 다 나을 때까지 입원해야 한다고 했다. 학교에 병가를 내고 한달 동안 꼼짝없이 누워서 지냈다.

그 때, 다친 허리는 지금도 좋지 않다. 무거운 물건을 들고 나면 한참동안 허리가 아프고, 반듯하게 누워서 다리를 세웠다가 뻗으면, 뚜둑거리는 소리가 난다. 어설프게 시작한 싸움으로 평생 고생하는 신세가 되었다. 옳게 싸워보지도 못하고... ...

 

나는 어릴 때, 힘세고 싸움 잘하는 사람이 최고라고 생각하고, 나도 그렇게 되기 위해 노력하였다. 그러나 살아가면서 지혜가 없는 힘과 용기는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제갈공명이나 송강이 힘센 사람들을 지배할 수 있었던 것은 지혜가 있었기 때문이다. 세상은 힘센 사람이 다스리는 것이 아니라 지혜 있는 사람이 다스린다.(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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