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나라

바리데기

kdy820 2010. 2. 16. 13:38

바리데기


1. 바리공주의 탄생과 부모와의 이별

옛날에 천별산을 다스리는 오구대왕이 있었다. 나라를 잘 다스렸는데, 정전(正殿)이 비어 있는 것이 흠이었다. 여러 종실과 시신백관이 간택할 것을 권하자 대왕은 간택을 허락하는 전교를 내렸다. 나라에 영을 내려 간택을 하는데, 이간택, 삼간택을 하여 길대부인을 국모로 모시게 되었다.

"국가의 길흉을 알고 싶은데 어디 용한 복자(卜者-점을 치는 사람)가 있더냐?"

대왕마마가 시녀 상궁에게 물었다.

"천하궁의 갈이박사(박수- 남자무당)), 제석궁의 소실악씨(소실애기씨 - 여자무당), 명도궁(저승)의 강림박사(강림도령 - 저승사자)가 용하다고 하더이다."

"천하궁에 가서 문복(問卜-점을 치다)하여라"

대왕의 전교를 받은 상궁은 생진주 석 되 서홉, 금돈 닷 돈, 자금 닷 돈을 간추려 싸가지고 천하궁의 갈이박사를 찾아갔다.

천하궁의 갈이박사는 백옥반에 백미를 흩어놓고 점을 치기 시작했다.

"초산은 흐튼산이요, 이산은 상하문(上下門)이요, 세 번째는 이로성이외다."

상궁에게 점괘를 일러 주었는데,

"아뢰옵기 황송하나, 금년에 길례를 하면 칠공주를 보실 것이오, 내년에 길례를 하면 삼동궁(세사람의 왕자)를 보시리이다."

상궁은 돌아와 그대로 아뢰었다. 상궁의 말을 들은 대왕은 웃으면서 말했다.

"문복이 용하다고 한들 제 어찌 알소냐, 일각이 여삼추요, 하루가 열흘 같은데 어떻게 기다리겠느냐?"

오구대왕은 예조에게 택일을 명했다.

삼월 삼일을 초간택을 봉하시고 오월 오일 단오는 이간택을 봉하시고, 칠월 칠일 견우직녀가 상봉하는 날을 길례로 정하고 길례도감을 설치한 후 준비하시기 시작했다.

세월은 유수와 같아 몇 달이 지나가니 길대부인의 몸에 이상이 생겼다. 수라에서는 생쌀내가 나고, 어수(중전마마가 드시는 물)에서는 해감(물속에 생기는 썩은 냄새나는 찌꺼기)내가 나고, 금광초(담배의 일종)에 풋내가 나고 탕수(국)에서는 날장내(생장냄새)가 나 모든 음식을 먹을 수 없었다.

대왕마마에게 아뢰자 대왕마마가 묻는다.

"몽사가 어떠하더이까?"

"예, 품안에 달이 돋아 뵈고 오른 손에 청도화(靑桃花) 한 짝을 꺾어 들고 있더이다."

대왕마마는 상궁에게 문복 가라 명했다.

천하궁의 갈이박사는 점을 쳐 상궁에게 일러준다.

"길대 중전마마의 태기가 분명하구나. 자식을 보시는데 여공주를 볼 것이오."

그대로 상달하자.

"문복이 용하다고 한들 제 어찌 알쏘냐?"

하고 웃어 넘긴다. 열 달이 되어 낳으니 공주였다. 공주의 탄생을 대왕마마께 아뢰자

"공주를 낳았으니 세자인들 아니 날쏘냐, 귀하게 길러라."

하신다. 공주 애기가 태어난 지 석 달이 되자 청대공주라 하고 별호로 달이장 아씨라 하였다.

세월이 흘러 길대부인은 또 잉태했는데, 몽사를 말하기를

"품안에 칠성별이 떨어져 보이고 오른손에 홍도화 한 가지를 물고 있더이다."

또 딸을 낳아 이름을 홍도공주라 하고 별호로 별이장 아씨라고 하였다.

그리고는 아들이 태어나기를 기다렸는데, 계속 딸이 태어나 딸만 육형제를 두게 되었다.

육형제를 낳은 후 길대부인은 다시 잉태하였다.

"이번 몽사는 어떠하더이까?"

"이번 몽사는 연약한 몸이 부지하기 어려울까 하나이다. 대명전 대들보에 청룡 황룡이 엉켜져 보이고 오른손에 보라매, 왼손에 백마를 받아 보이고 왼 무릎에 흑거북이 앉아 뵈고 양어깨에는 일월이 돋아 뵈더이다."

길대부인의 말을 들은 대왕은 크게 기뻐했다.

"그대가 이번에는 세자 대군을 낳겠구려."

그리고는 상궁에게 문복갈 것을 명했다.

문복을 다녀온 상궁이 아뢰었다.

"이번에도 공주를 본다고 합니다."

"점복이 용하다 한들 점복마다 맞출쏘냐. 이번 몽사는 세자 대군을 얻을 몽사로다."

하며 사대문에 방을 붙어 옥문을 열어 중죄인을 용서하게 하였다.

드디어 열 달이 되어 해산을 하였는데 또 딸이었다. 길대 중전마마는 그만 울음을 터뜨렸다.

대왕은 길게 탄식하며 말하였다.

"내 전생의 죄가 남아 옥황상제가 일곱 딸을 점지하였구나. 서해 용왕에게 진상이나 보내리다."

옥장이 불러서 옥함을 짜게 하여 함 뚜껑에 '국왕공주'라 새기게 했다.

중전마마가 탄식하며 말했다.

"대왕마마는 모질기도 모지시다. 혈육을 버리려 하옵시니, 신하 중 자식 없는 신하에게 양녀로 주시지."

대왕마마는 중전마마의 말을 듣지 않았다.

"버리는 자손 이름이나 지읍시다."

"버려도 버릴 것이요 던져도 던질 것이니 '바리공주'라 지어라."

양 마마의 생월 일시와 아기의 생월 생시를 옷고름에 맨 후에 옥병에 젖을 넣어 아기 입에 물린 후 함에 넣었다. 금거북 금자물쇠, 흑거북 흑자물쇠를 채운 후에 신하를 시켜 바다에 버릴 것을 명했다.

앞에는 황천강, 뒤에는 유사강이 흐르는 여울에 한번 던지니 용솟음하여 뭍으로 다시 나오고, 두 번째 던져도 뭍으로 다시 나온다. 세 번째 던지니 물속으로 들어가는데 하늘이 안던 자손이라 깊이 가라앉지 않고 금거북이 나타나 지고 간다.


2. 부모와의 재회

이때, 석가세존이 삼천세자를 거느리고 사해도 구경하고 인간도 제도할 겸해서 세상으로 나오다가 타향산 서촌을 굽어보니 밤이면 서기가 하늘에 가득하고 낮에는 안개가 자욱한 것이 이상했다.

"목련존자 들어라. 저곳에 하늘이 아는 천인이 있을 것이니, 네가 가서 살펴보아라."

다녀온 목련존자가 석가세존에게 아뢰었다.

"소승의 눈에는 보이지 않습니다."

 세존은

"네 공부 아직 멀었다."

하시며 돌배를 바삐 저어 가까이 가보니 국왕의 일곱째 공주였다.

"남자 같으면 제자나 삼으련만 여자니 부질없구나."

석가세존은 탄식하였다.

주위를 살펴보니 비리공덕 할아비와 비리공덕 할미가 바랑을 둘러메고 노감투 숙여 쓰고 황천경을 손에 들고 자지곡(지옥노래)을 노래삼아 외우면서 온다. 석가 세존이 묻는다.

"어떤 할아비, 할미가 시름없이 다니는고?"

"저희는 비리공덕 할아비, 비리공덕 할미 입고, 절을 지어 승인(僧人)공덕, 다리 놓아 만인 공덕, 원을 지어 행인 공덕을 할지라도 옷 벗어 주는 대시주와 부엌 공덕이 가장 크고 젖 없는 자손 젖 먹여 주는 공덕이 제일입니다."

"여기에 하늘이 아는 자손이 있으니 데려다가 길러라."

석가세존의 말을 듣고 할미가 말했다.

"봄과 가을에는 들에서 머무르고 겨울에는 굴 속에 머무는데 어찌 중한 자손을 데려다 기르겠습니까?"

"이 아기를 데려다 기르면 집도 생기고 옷과 밥이 절로 생길 것이니 데려다 길러라."

말을 마친 석가세존은 온데간데없이 바람처럼 어디론가 자취도 없이 사라졌다. 그제서야 할아비와 할미는 부처님인 줄 알았다.

함을 굽어보니 국왕 칠공주라 써 있었다. 함 앞에서 효성경과 애정경과 금강경, 법화경, 천지팔양경을 차례로 외우니 함 뚜껑이 열린다. 함 속에 든 아이를 보니 입에는 왕거미가 가득하고 귀에는 불개미가 가득하고 허리에는 구렁이가 감겨 있었다. 아이를 데려다가 물로 깨끗하게 씻겼다. 가사 장삼을 벗어 씻은 아이를 안고 돌아서니 난데없는 초가삼간이 절묘하게 지어져 있다. 비리공덕 할아비, 비리공덕 할미는 거기서 아이를 키우기로 하였다.

아기는 점점 자라나 어느 덧 일곱 살이 되니 배우지 않은 학문에도 능통하여 상통천문 하달지리 육도삼략 모두가 무불통지하여 모를 것이 없다.

하루는 아기가 묻는다.

"할미 할아비야, 내 아바마마 어마마마는 어디 계시냐?"

할아비와 할미가 아뢴다.

"아바마마는 하늘이고 어마마마는 땅이로소이다."

"할아비, 할미, 거짓말마소. 천지가 인간을 골육으로 두던가."

할미는 뜰로 내려가 옷깃을 여민 후 눈물을 흘리며 아뢴다.

"무주고아(無主孤兒)인 아기씨에게 의탁하려 하였더니 부모를 찾습니까. 전라도 왕대(王竹)가 아바마마이시고, 뒷동산 옆 넓은 머구나무가 어마마마이십니다."

"할미 거짓말 마소, 금수와 초목도 인간 골육을 두던가, 전라도 왕대는 아바마마 승천하시면 아랫동 윗동 잘라낸 후 두건 숙여 쓰고 짚는 데 쓰는 것이고, 뒷동산 머구나무는 어마마마 승하하시면 아랫동 윗동 잘라내고 두건 숙여쓰고 짚으라는 것이니 그게 어찌 부모 되겠나." 

이럭저럭하여 세월은 자꾸 가고 아가씨는 십오 세의 나이가 되었다.

한편 대왕마마 내외가 한날 한시에 똑같이 병이 들어 시녀 상궁들은 걱정이 많았다. 하루는 대왕마마가 상궁을 부르더니

"옛날의 문복이 용하더구나. 가서 점 한 번 쳐보아라."

하고 문복할 것을 명했다.

상궁이 천하궁의 갈이박사를 찾아가 점괘를 들었다.

"동쪽에는 해가 떨어지고 서쪽에는 달이 떨어지니 양전마마가 한날 한시에 승하하리다. 바리공주의 사처를 찾으소서."
 점괘를 들은 대왕마마는 길게 탄식하였다.

"종묘사직을 뉘게다 전하고 조정 백관은 뉘게 의지할꼬, 만백성은 뉘게 의탁하고, 시녀 상궁은 뉘게 의지할쏘냐?"

눈물을 흘리다가 언뜻 잠이 들었는데 뜰 가운데에 난데없는 청의동자가 나타나 절을 한다.

"어떠한 동자인데 깊은 궁중에 들어왔느뇨?"

동자가 올라와서 아뢴다.

"양전 마마가 한날 한시에 승하하시게 될 것입니다. 지금 사자들이 오고 있습니다."

"조정 백관에 원망이 있더냐? 시녀 상궁에게 원책이 있더냐? 만인에게 원한이 있다더냐?

대왕이 묻자 동자가 대답한다.

"원책도 아니오. 원망도 아닙니다. 옥황상제가 점지한 칠공주를 버린 죄로 그러합니다."

"그러면, 어찌 다시 회춘하리오?"

"다시 회춘하려면 동해 용왕과 서해 용왕이 있는 용궁에서 약을 잡수시거나, 삼신산 불사약과 봉내방장 무장승의 양현수(약수)를 얻어 잡수시면 회춘하리다. 바리공주 사처를 찾으소서"

하고 동자는 온데 같데 없이 사라졌다. 그제서야 깨어보니 남가일몽 꿈이었다.

대왕마마는 신하들을 불러 물어보았다.

"약수를 얻어다가 나를 회춘시킬 신하가 있는가?"

"동해 용왕도 용궁이고 서해 용왕은 천궁이고 봉내방장 무장승의 향헌수는 수용궁이라 살아 육신은 못 가고 죽어 혼백만 갈 수 있는 곳입니다. 거행할 신하가 없습니다."

신하들이 아뢰는 말을 들은 대왕은 눈물을 흘리면서 용상을 치며 탄식하였다.

"바리공주 찾는 자는 천금상에 만호후를 봉하리라."

신하들에게 바리공주 찾을 것을 명령했다.

한 신하가 나와 대왕마마에게 아뢴다.

"소신은 대대로 국록을 먹어 국은이 망극합니다. 간밤에 천기를 잠깐 보니 서쪽에 밤이면 서기가 하늘에 가득하고 낮에는 운무가 자욱하니 그곳에 공주가 계신 것 같습니다. 소인이 찾으러 가겠습니다."

그러자 중전마마가

"간 곳도 없이 한번 버린 자손을 어디 가서 찾으리요?"

하면서 탄식하였다.

"그리하여도 가려하나이다."

신하는 거듭 청했다.

"그러면 가라."

대왕마마는 어주 삼배를 내린 후에 하직하고 길을 떠나 보냈다.

대궐문을 나서자 어딘지 갈 바를 몰라 신하가 망설이고 있는데, 까막까치가 나타나 고개짓을 하며 길을 인도하고 풀과 나무들도 한곳으로 쏠리며 방향을 알려 인도해 태양 서촌으로 찾아 들어갔다.

마을에 들어가니 월직 사자와 일직 사자가 나타나 묻는다.

"인내(사람 냄새)가 나는구나. 그대는 사람인가 귀신인가. 길짐승, 날새도 못 들어오는 곳에 어떻게 왔는가?"

"나는 양전 마마의 명을 받들고 바리공주를 찾기 위해 생사를 결단하고 왔나이다."

사자들은 신하를 대문으로 안내했다. 쇠문을 두드리며 소리쳐 부르니 비리공덕 할아비, 할미가 나온다.

"귀신이냐 사람이냐? 날새 길짐승도 못 들어오는데 천궁을 범하느냐?"

"저는 국왕마마의 분부로 바리공주를 찾아왔나이다."

바리공주가 나와서 신하에게 묻는다.

"표적을 가져왔는가?"

"아기의 칠일 안저고리를 가져왔습니다. 죄가 많아 국왕 자손을 이 산중에 버렸구나 하시면서 용루를 흘리시며 표적을 주더이다."

바리공주가 표적을 받아보니 양전 마마의 생월 생시며 애기의 생월 생시가 꼭 같았다.

"그래도 못 가겠구나. 다른 표를 가져오너라."

금쟁반에 정안수를 담고 대왕마마 무명지를 베어 피를 흘리게 하고 아기 무명지를 베어 섞으니 한 데로 합친다. 그제서야 바리공주는

"틀림없는 혈육이니 가겠노라."

고 하며 따라나선다.

"그리하면 금연(金輦)을 드리릿가. 옥교(玉較)를 드리릿가?"

공주는 사양하였다.

"그리하오면 거동 시위를 하오릿까?"

"거동시위를 내 어찌 알겠느냐. 그대로 가리라."

바리공주는 자기가 살던 곳을 정리한 후 대궐을 향해 떠났다. 일행은 몇 날을 걷고 또 걸어서야 대궐에 당도했다.

"궐문 밖에 도달하였나이다."

신하가 먼저 들어가 대왕마마에게 아뢰었다.

"그러냐, 궐문에 들게 하라"

바리공주가 대명전에 읍하고 통곡하니 대왕마마는 용루를 흘리시며

"저 자손아 울음을 그쳐라. 네가 미워 버렸으랴. 역정 끝에 버렸도다. 봄삼월은 어찌 살고 겨울 삼삭은 또 어찌 살았으며, 배고파서 어찌 살았느냐?"

바리공주는 울음을 그치며 말했다.

"추위도 어렵고 더위도 어렵고 배고픔도 어렵더이다."

"그래 어허, 저 자손아 부모 목숨 구하러 가겠느냐?"

"아흔 아홉 빗장 속에서 청사 흑사 이불에 진주 안석으로 귀하게 기른 여섯 형님네는 어찌 못 가나이까?"

여섯 형님네가 옆에 있다가.

"뒷동산 후원에 꽃구경 가서도 동서남북을 분간치 못하고 대명전도 찾지 못하는데 서천서역을 어찌 갈 수 있겠느냐?"

바리공주가 드디어 가겠다고 나섰다.

"소녀는 열달 동안 부모님 뱃속에 있었으니 그 은혜가 커서 가도록 하겠나이다."

 

3. 바리공주의 모험

대왕마마는 바리공주에게 비대 창옥, 비단 고의, 고운 패랭이, 무쇠 질방, 무쇠 주령, 무쇠 신을 내려 주었다. 바리공주는 그것을 받아 몸에 걸친 후 대궐문을 나섰다. 나서니 동서를 분간치 못하고 갈 곳도 아득했다. 망설이고 있는데 까막까치가 날아와서 길을 인도해 준다. 바리공주가 무쇠 지팡이를 한 번 짚으니 천 리를 가고, 두 번 짚으니 이천 리를, 세 번 짚으니 삼사천 리를 간다. 때는 춘삼월 호시절로 백화는 만발하고 시내는 잔잔했다. 푸른 버들 속에 황금 같은 꾀꼬리는 벗을 부르느라 지저귀고 앵무 공작은 서로 희롱한다.

금바위 밑을 보니 반송이 구부러졌는데 석가여래와 지장보살이 바둑을 두고 있다. 바리공주는 나가 재배하였다. 그러자 석가세존님은 눈을 감으시고 지장보살이 말씀하신다.

"귀신인가 사람인가? 날짐승 길짐승도 못 들어오는데 천궁을 범하였구나"

"조선국왕의 일곱째 대군인데 부모님 목숨 구할 약수 가지러 왔다가 길을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소신의 길을 인도하소서"

그제서야 석가세존님은 눈을 뜬다.

"나는 국왕의 칠공주란 말은 들었지만 일곱째 대군이란 말은 듣던 중 처음이로다. 네가 하늘은 속여도 나는 못 속이리라. 너를 태양서촌에 버렸을 때 잔명을 구한 게 나인데 나를 속일쏘냐? 부처님 속인 죄는 팔만사천 지옥을 가는 죄이다. 그래도 네가 용하구나. 육로 육천리를 왔으니 험한 길 삼천리가 남았는데 어찌 가려느냐?"

"가다가 개죽음을 당할지라도 가려 하나이다."

석가세존님은 감동한 듯 머리를 연신 끄덕인다.

"정성이 지극하면 지성이 감천이다. 네 말이 기특하니 내가 길을 인도하리라. 낭화(열매를 맺지 않는 꽃)를 가져 왔느냐?"

"촉망중이라 가져오지 못했나이다."

석가세존님은 낭화 세 가지와 금주령을 주시며 일러준다.

"이 주령을 끌고 가면 험로가 평탄해지고 대해는 물이 되느니라"

바리공주는 두 손으로 받고 하직 인사를 올린 후 길을 떠났다.

한 곳에 당도하니 칼산지옥, 불산지옥, 독사지옥, 한빙지옥, 구렁지옥, 배암지옥, 문지옥이 펼쳐져 있었다(팔만 사천지옥). 철성(鐵城)이 하늘에 닿았는데 구름도 쉬어 넘고 바람도 쉬어 넘는 곳이었다. 귀를 기울이니 죄인 다스리는 소리가 나는데 육칠월 악마구리 우는 소리 같았다. 낭화를 흔드니 철성이 무너지고 죄인들이 쏟아져 나왔다. 눈 없는 죄인, 팔 없는 죄인, 다리 없는 죄인, 목 없는 죄인, 귀졸들이 나와 바리공주에게 매달리며 구제해 달라고 애원한다. 바리공주는 그들을 위해 염불을 외어 극락 가기를 빌어주었다. 바리공주가 이곳을 지나니 또 커다란 바다가 펼쳐 있다. 이곳은 날짐승의 깃도 가라앉는 곳으로 배도 없는 곳이다. 망설이던 바리공주는 부처님의 말씀을 생각하고 금주령을 하늘로 던졌다. 그러자 무지개가 생겨 건너갈 수가 있었다. 건너가니 키는 하늘에 닿고, 눈은 등잔 같고 얼굴은 쟁반 같은 무장승이 서 있다.

"사람인가 귀신인가? 열 두 지옥을 어찌 넘어오며 바람도 쉬어 넘고 구름도 쉬어 넘고 산진이 수진이 해동청 보라매도 쉬어 넘는 철성을 어떻게 넘어 왔는가? 또 모든 것이 가라앉는 삼천리 바다(약수-부력이 약하여 큰 기러기의 털도 가라앉는다고 한다)는 어찌 넘어 왔는가?"

"나는 국왕의 일곱째 대군인데, 무장승의 약수를 얻어다가 부모님 살릴려고 왔나이다,"

"그대 길 값을 가져왔는가?"

"촉망중에 못 가져 왔나이다."

"길 값으로 나무 삼년 하여 주오,"

"그리 하오이다."

"삼값으로 불 삼 년 때 주오."

"그리 하오이다."

"물 값으론 물 삼 년 길어 주오."

"그리 하오이다."

세월은 흘러 어느덧 석삼년 아홉 해가 되니 하루는 무장승이,

"그대의 상이 남루하여 보이나 앞으로는 국왕의 기상이요, 뒤로는 여인의 몸이니 나와 천생 배필이라. 혼인하여 아들 일곱을 낳아 주오."한다.

바리공주와 무장승은 천지로 장막을 삼고, 일월로 등촉을 삼고, 썩은 나무 등걸로 원앙금침을 삼고 살림을 시작했다. 세월은 또 흘러서 바리공주는 마침내 아들 입곱을 낳아 주었다.

바리공주는 이제 그만 돌아가겠다고 했다.

"부부의 정도 중하지만 부모님께 효행이 늦어지니 바삐 가야겠나이다."

"앞바다의 물 구경을 하고 가소."

무장승이 청했다.

"물 구경도 싫소."

"뒷동산 꽃 구경 하고 가소."

"꽃 구경도 싫소. 초경에 꿈을 꾸니 금관자가 부러져 뵈고 이경에 꿈을 꾸니 신관자가 부러져 뵈더이다. 양전 마마가 승하할 꿈이니 급히 가야겠소."

"그리하면 그대가 길어다 쓰는 물이 약수이니 가져가고, 베던 풀은 개안초이니 가져가오. 뒷동산 후원의 꽃은 숨살이, 뼈살이, 살살이 꽃이니 가져가오. 숨살이, 뼈살이, 살살이의 삼색 꽃은 눈에 넣고 개안초는 몸에 품고 약수는 입에 넣으시오."

바리공주는 물을 넣어 짊어지고 하직 인사를 한 후 길을 떠나려 하자.

"그 전에는 혼자 살았으나 이제는 혼자 살 수 없소. 나도 공주 따라 가리다."

무장승도 가겠다고 나섰다. 갈 때는 한 몸이더니 돌아올 때에는 아홉 몸이었다.


4. 부모님의 회생과 무신이 된 바리공주

갈치산 불치 고개 대세지 고개를 넘어오니 피바다에 배들이 떠다닌다.

"염불을 외우고 아미타불 소리 요란하고, 연꽃이 사방에 바쳐져 있고 거북이 받들고 청룡 황룡이 끄는 배는 어떤 밴고?"

바리공주가 그 중의 한 사람에게 물었다.

"그 배에 오는 망자는 세상에 있을 적에 다리 놓아 만인공덕, 원을 지어 행인 공덕, 절을 지어 중생 공덕, 옷을 벗어 시주하고 배고픈 사람에게 밥을 주고 염불 열심히 하고 만인에게 시주하여 극락세계 연화대로 소원 성취하러 가는 배입니다."

그 뒤에 배 한 척이 또 따르고 있어 바리공주가 물어보았다.

"풍류로 잔치하고 화기가 만발하여 웃음으로 열락(悅樂)하고 고운 향기가 가득하여 맑은 기운을 띠고 오는 배는 어떤 밴고?"

"그 배에 오는 망자는 세상에 있을 적에 나라에 충신이요 부모에 효성하고 동기간에 우애 있고 일가에 화목하고 동네 사람에게 유순하고 가난한 사람 구제하며 선심으로 평생을 살다가 죽은 후에 초단에 사제 삼성 지노귀굿 받고 이단에 새남굿 받고 삼단에 법식 받고 시왕제 사십구제 백일제 받아 극락세계에 왕생극락하러 가는 배로소이다."

"또 그 뒤에 오는 활 든 사람, 창 든 사람이 둘러있고 머리 풀어 산발하고 의복도 벗기고 결박하여 울음소리 가득하고 모진 악기가 충만하니 그것은 또 어떤 배인고?"

"그 배에 오는 망자는 세상에 있을 때에 나라에 역적이요, 부모에게 불효하고, 동기간에 우애 없고, 일가에 살(煞)이 세고, 동네 사람에게 불순하고, 시주도 못하고, 남의 험담 잘하고, 남의 말 엿듣고 역매흥정하고, 이간질하여 싸움 붙이기와 사람 죽이기 심하고, 탐이 많아 작은 되로 주고 큰 말로 받고, 짐승 많이 죽이고 불법을 비방하였기에 화탕지옥 칼산지옥으로 가는 배로소이다."

또 한 배가 보이는데 그 배는 불도 없고 달도 없고 임자도 없고 조용히 흘러가고 있었다.

"저 배는 어떤 밴고?"

"그 배에 있는 망자는 무자귀신(無子鬼神)과 해산길에 죽은 망자와 시왕제(十王祭) 사십구제 지노귀 새남도 못 받고 길을 잃고 세계를 몰라 임자 없이 얹혀 있는 배로소이다."

리공주는 크게 슬퍼하며 염불하여 그들이 극락왕생하도록 해주었다.

바리공주가 유사강을 지나 세상으로 나오니 소여 대여가 나온다. 산에서 나무를 베는 초등들에게 어떤 연고의 소여, 대여냐고 물었다.

"대가를 받아야 말하겠오."

바리공주가 아기 업었던 수건, 일곱 자 일곱 치 고를 풀어서 주니 초동들은 그제서야 대답한다.

"양전 마마 한날 한시에 승하하셔서 북망산천으로 가시는 상여로이다."

그제서야 명정을 보니 임금 왕자가 뚜렷했다. 바리공주는 머리 풀어 산발하고 무장승과 일곱 아들을 감춘 후 상여 앞으로 나가 소여꾼과 대여꾼을 물리게 하고 관을 뜯어서 양전 마마를 묶은 안매 일곱매 밖매 일곱매, 소대렴을 풀고 좌수와 우수를 편안하게 한 후에, 바리공주는 조정 백관과 시녀 상궁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양전마마의 입에 서천서역에서 가져온 약수를 넣고 또 개안수를 양전 마마의 품에 넣고 또 뼈살이꽃, 살살이꽃, 피살이꽃을 눈에 넣으니, 양전마마가 후 하고 긴 숨을 내쉬며 기지개를 키고 일어나 앉으면서

"이게 잠결이냐 꿈결이냐? 시녀 상궁들이 무슨 일로 다 모였느냐? 앞바다 구경하고 왔느냐? 뒷동산 꽃구경 갔다 왔느냐?"

조정 백관들이 아뢰었다.

"버렸던 자손이 약수를 구해 와서 양전마마 회춘하셨나이다. 바삐 환궁하사이다."

나오실 적에는 곡성을 하며 인산이었는데 돌아가실 제는 거동 시위가 분명했다. 상궁 시녀가 뒤따르고 별감이 시위하여 환궁하는데 녹의 홍상이 꽃밭을 이루어 나라 안은 기쁨으로 가득 찼다. 환궁하여 정좌한 후에 대왕마마는 바리공주에게 물었다.

"나라 반을 베어 너를 주랴?"

"나라도 싫소이다."

"그러면 사대문에 들어오는 재산 반을 나누어 너를 주랴?"

"그도 다 싫소이다. 그간 저는 죄를 지어 왔나이다."

"무슨 죄를 지어 왔는가?"

"부모 위해 약수 구하러 갔다가 무장승을 만나 일곱 아들을 낳아 왔나이다."

"그 죄가 네 죄가 아니라 우리 죄라."

대왕마마는 무장승 입시할 것을 명했다. 잠시 후 신하들이 돌아와 아뢴다.

"광화문에 사모뿔이 걸려 못 들어오나이다."

"옥도끼로 찍고 들어오게 하라."

무장승이 입시하니 대왕마마는 깜짝 놀라

"몸 생김이 저만하고 일곱 아들 있다 하니 먹고 살게 하여 주마."하자,

"비리공덕 할아비와 할미도 먹고 입게 제도하여 주옵소서."

하고 바리공주는 자신의 양부모인 비리공덕 할아비 할미의 은덕을 아뢰었다.

대왕마마는 모두에게 골고루 은덕을 베풀어 제도해 주었다.

무장승은 산신제 평토제를 받아먹고 살게 점지하였으며, 비리공덕 할미는 지노귀 새남굿을 할 때 영혼이 저승으로 들어가기 위해 거쳐가는 가시문과 쇠문, 시왕문에 지켜 섰다가 별비(別費)를 받아먹고 살게 점지하고, 바리공주의 일곱 아이들은 저승의 십대왕이 되어 먹고 살게 점지하였다. 그리고 바리공주는 인도국 보살이 되어 절에 가면 만반 공양을 받고, 들로 내려오면 큰머리 단장에 은아몽두리 입고 언월도와 삼지창, 방울과 부채를 손에 든 무당이 되어 죽은 영혼을 저승으로 인도하도록 마련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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