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데르센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은 1805년 덴마크의 푸넨섬에 있는 오래 된 도시 오덴세에서 제화공 한스 안데르센의 외아들로 태어났다. 그러나 제화공 아버지는 직공조합에 가입할 수도, 제자를 받을 수도 없는 최하급 직공이었다. 안데르센이 태어난 뒤에도 세 사람은 함께 생활할 만한 여유가 없었다. 그래서 어머니는 유모로 일하면서 친정어머니와 함께 생활했고, 아버지는 다른 가게에서 제자로 일했다. 한집에서 살게 된 것은 1년 뒤였다.
안데르센이 일곱 살 때 코르시카 섬의 가난한 귀족에서 입신양명해 유럽 전역을 혁명의 도가니로 몰아넣은 나폴레옹을 숭배한 아버지는 갑자기 일을 그만두고 독일과 교전 중인 나폴레옹 군에 지원한다. 하지만 나폴레옹군이 몰락하자 상심해 고향으로 돌아오자마자 정신병에 걸려 죽고 만다. 이 때 안데르센은 열한 살이었다.
그의 어머니는 아버지보다 열다섯 살이나 많았다. 더구나 두 사람은 안데르센이 태어날 무렵에야 정식으로 결혼한 사이였다. 그녀는 어린 시절 구걸을 해야 될 정도로 매우 가난했으며, 글도 읽을 줄 모르는 교양 없고 천박한 여자였다. 게다가 성에 대한 개념도 전혀 없었던 그녀는 안데르센이 태어나기 6년 전 도자기행상에게 꼬임을 당해 사생아를 낳는다. 안데르센은 평생 동안 그 여자아이의 존재를 숨겼다. 그녀는 남편이 죽자 2년 뒤 다시 젊은 남자와 재혼한다. 하지만 그 남자와도 사별한 뒤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힘든 생활을 꾸려나가다가 급기야 알코올 중독자가 되어 정신병원에서 죽고 만다. 외가 쪽은 가난한 탓이었는지 성생활이 문란했다. 할머니는 세 명의 사생아를 낳은 죄로 투옥되었고, 숙모는 코펜하겐에서 매춘업을 했다.
친할아버지는 제화공이었다. 그는 가난한 소작인이었으며, 오덴세에 온 뒤로는 이상한 모양의 인형이나 동물을 만들어 마을을 돌아다니며 구걸하듯 팔았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많은 놀림을 받았는데, 안데르센은 그런 할아버지에게 늘 비난의 눈초리를 보냈다.
친할머니는 병적인 거짓말쟁이로 ‘내 외할머니는 독일 대도시의 부유한 귀족 딸이었지만 희극배우와 눈이 맞는 바람에 가난뱅이로 전락하고 말았다’고 안데르센에게 말하곤 했다.
그는 작가로 유명해진 후에도 혈육에 대한 편집증적 열등감과 신경과민 증세를 보였다. 그래서 은근히 건방을 떨거나 비굴해지거나 정신적으로 불균형적인 모습을 보일 때가 많았다.
다행히도 그는 필요한 순간에 도움을 주는 사람을 만나 인생을 개척해 나갈 수 있었다. 예를 들면 아버지가 죽은 직후인 열한 살 때에는 근처에 사는 목사의 미망인을 만나 책을 접하게 되었다. 학교에 다니지 않았던 그는 세익스피어와 괴테의 문학작품에 몰두하거나, 그녀로부터 시인이라는 지위의 훌륭함에 대해 듣고 많은 영향을 받았다.
그 뒤 그는 예술가를 강하게 동경하게 된다. ‘지금은 가난하지만 장차 예술가가 되어 세상을 흔들겠다’는 야심의 싹을 키운 것도 그 무렵이다. 그 모습은 마치 ‘미운 오리새끼’와 같이 태어난 환경은 나쁘더라도 언젠가는 아름다운 백조로 거듭나겠다는 자세와 같다.
그는 자신의 재능에 대해 큰 자신감을 갖고 있었다. 그리하여 작품의 평판에 따라 울고 웃으면서도 계속 작품을 발표했다. 그 에너지의 원천은 바로 실생활 속에서는 도저히 만족할 수 없었던 영혼에 대한 위로였다.
그는 28살에 라틴어학교에 장학생으로 들어가는데, 후원자의 딸을 사모하여 자신의 어두운 과거를 적은 자서전풍의 러브레터를 일방적으로 보낸다. 하지만 그것은 한 구절도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다른 남자에게 그녀를 빼앗기고 만다.
작가로서의 매력은 있을지언정 남자로서의 매력은 찾아볼 수 없었던 안데르센은 평생을 동정으로 보냈지만 여성에 대한 관심은 누구보다도 많았다. 아무리 순애보로 다가가도 받아주지 않는 여성에 대한 불만과 억누르려 해도 억누를 수 없는 동경은 안데르센에게 큰 고통을 주었다. 실제로 안데르센은 그 후에도 두 여성을 사랑하게 되지만 결실은 맺지 못했다.
두 번 다시 쓰라린 경험을 하지 않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단 한 가지, 사랑을 하지 않는 것뿐이었다. 안데르센은 40세 때 23세의 가수에게 자신의 간절한 마음을 거절당하자 평생 동안 독신으로 지내기로 결심한다. 그 때까지의 사랑은 모두 짝사랑뿐이었다. 몇 번 사랑을 고백한 적이 있지만 그 때마다 여자들로부터 거절당했던 것이다. 그로 인한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방법은 잊는 것밖에 없었다.
그래서 그는 여행을 떠난다.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프랑스, 이탈리아, 독일, 스위스 등지를 돌아다니는데, 스위스에 머무르는 동안 정리한 것이 희곡 ‘아그네테와 인어’였다. 이 작품은 안데르센의 대표작품인 인어공주가 완성되기 4년 전에 나온 작품이다.
남자 인어에게 프로포즈를 받은 아그네테가 바닷속에서 함께 살면서 일곱 명의 사내아이를 낳는다. 어느 날 교회의 종소리에 향수를 느낀 아그네테가 고향으로 돌아가겠다고 하자 남자 인어는 다시 돌아오겠다고 약속하면 보내주겠다고 한다. 그러나 고향으로 돌아간 아그네테는 약속을 어기고 두 번 다시 바다로 되돌아오지 않는다는 줄거리다.
‘인어공주’는 안데르센의 대표 작품으로 집필 중 몇 번이나 눈물을 흘리면서 온갖 정성을 기울여 완성한 명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