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카가 수성구에 있는 아파트로 이사했다. 아내와 함께 축하해주러 갔다. 입택 기념으로 중국 음식점에서 저녁을 대접한다 하여 예약해둔 식당에 갔다. 나와 아내, 동생 부부와 조카가 회전판이 돌아가는 둥근 탁자에 둘러앉아 코스 요리를 먹었다.
중식당에서 나와서 조카 집으로 갔다. 현관문을 열자마자 혼자 있던 강아지가 꼬리를 흔들면서 열렬히 반긴다. 거실에 들어서는 사람마다 두 발을 올려 바지에 대고 꼬리를 흔든다. 조카가 키우는 마티푸(마티즈+푸들) ‘살구’다. 뒷발로 서면 머리가 내 무릎에 닿을 정도로 키가 작다. 갈색 털이 곱슬곱슬하고 다리가 길고 배는 홀쭉하여 날렵하게 생겼다. 작고 검은 눈은 늘 반짝이고, 입은 꼭 다물고 있어서 언뜻 봐도 명견임을 알 수 있다.
아파트는 30평이고, 남북으로 트인 거실 겸 주방을 중심으로 동쪽에 안방, 서쪽에 건넌방과 서재가 있다. 안방과 서재는 조카가 사용하고, 건넌방은 살구가 쓴다. 서재보다 큰 살구의 방에는 개집이 있고, 천으로 된 매트가 깔려 있고, 장난감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우리가 소파에 앉아서 와인을 마시고 과일을 먹는 동안 살구는 탁자 주위를 부지런히 돌아다닌다. 가는 길을 막으면 입으로 ‘그르르’ 소리를 내서 경고하고 살짝 깨물기도 한다. 잠시 한눈을 팔면 탁자 위로 앞발을 올리고 과일 맛을 보려고 한다. 조카가 장난감을 주고, 껌을 줘도 본 척 만 척한다.
나와 아내, 동생 부부의 눈은 강아지에게서 떨어지지 않는다. 동생이 화장실에 갔다 오면서 문을 닫았다. 살구가 따라가다가 돌아오더니 거실 한쪽에 오줌을 쌌다. 조카가 화장실 문이 잠겨서 그렇다고 하면서, 티슈를 뽑아 개의 성기에 묻은 오줌을 닦고 바닥의 노란 오줌을 닦는다. 능숙한 개집사의 모습이다.
아내와 금호강 둔치를 걸을 때마다 개를 데리고 다니는 사람들을 많이 보았다. 개들은 산책로를 앞장서 걷거나 잔디밭에서 뛰어놀고, 개집사들은 돌보느라 바쁘다. 개가 끄는 대로 따라가는 사람, 산책로 주변 나무 둥치에 오줌 누는 개를 기다리는 사람, 잔디밭에서 비닐장갑 낀 손으로 개똥을 주워 검정 봉지에 담는 사람도 있다. 조카도 시간이 날 때마다 살구를 산책시킨다. 살구는 사람이 많은 곳을 좋아해서 수성못에 자주 간다고 한다.
아내가 살구의 혈통증명서를 보고 있어서 얼마짜리인지 물어보았다. 320만원이란다. 다른 수첩에는 각종 예방주사 접종 이력이 적혀 있는데, 코로나19 접종도 마쳤다고 한다.
조카가 출근하기 전에 살구를 개유치원에 데려다주고 퇴근한 후에 데리고 온다. 저녁을 먹은 후 거실에서 같이 놀다가 저마다의 방으로 가서 자는 것이 일과라고 한다. 철마다 옷을 사입히고, 미용실에 데리고 가서 털을 깎이고 손톱, 발톱 손질도 해준다. 아플 때 동물병원에 입원시키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언젠가 살구가 죽으면 동물화장장에서 화장을 하고 납골당에 안치하고 생각날 때마다 찾아갈 것이다.
원래 인간과 개는 공생관계였다. 인간은 개에게 안전한 안식처과 식량을 제공하고 개는 낯선 침입자들로부터 인간을 보호해주고, 사냥을 돕기도 했다. 오늘날 인간은 일상생활에서 개의 도움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도시에 사는 인간은 사냥을 할 일도, 야생동물의 침입에 대비할 필요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개와 함께 사는 길을 택하고 있다. 공생관계에서 친구관계가 된 것이다.
이제 개는 인간에게 위안을 주는 대표적인 반려동물이 되었고, 인간이 개를 위해 사는 세상이 되었다. 살구는 스스로를 어떤 존재라고 생각할까? 자기를 대하는 사람들의 행동을 통해 인간 하인을 둔 아파트의 주인이라고 생각하지 않을까?
남아도는 방이라고 해도, 개에게 방 한 칸을 주는 것은 너무 심하지 않은가. 집으로 돌아오면서 아내에게, 개는 베란다에서 키워야지 방에서 키우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했다. 아내는 그런 소리 말라고, 요즘은 다 그렇게 한다고 반박했다.
군위 우보에서 내가 다니는 산책길 옆에 개집이 하나 있다. 사람이 지나갈 때마다 큰 소리로 짖는 개가 거기 산다. 목욕을 하지 않아 꾀죄죄하다. 옷도 걸치지 않았다. 목줄은 전봇대에 묶여 있다. 부근에는 개똥이 널려 있다. 그래도 사람이 안보일 때까지 줄기차게 짖는다. 하루종일 묶여 지내지만 자기가 해야 할 일은 열심히 한다.
아파트에 살면서 유치원에 다니고, 주인을 데리고 산책하는 개는 낯선 사람을 보고 절대로 짖지 않는다. 그런 개는 개가 아니다.(202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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