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북도교육청문화원에서 <개그의 맛> 공연을 봤다. 고객 참여형 패러디 콩트, 외국인만 모르는 대한민국 공감대 개그, 속담 개그 등이 기억에 남는다.
개그는 다른 사람에게 웃음을 주기 위해 즉석에서 하는 대사나 몸짓이다. 한때 모 방송국의 개그 콘서트는 인기가 많아서, 어린이들이 개그 코너를 흉내기도 하고 장래 희망을 개그맨으로 적기도 했다.
개그에서는 대본에 있는 말보다는 즉흥적이고 재치 있는 애드립이 우리에게 웃음을 안겨준다. 말을 빠르게 하는 것보다 순간적인 임기응변이나 그 상황에서 전혀 생각할 수 없었던 기발한 말들이 개그를 맛나게 한다.
개그맨보다 말을 빠르게 하는 사람은 래퍼가 아닐까. 랩 경연 프로그램을 보면 어떻게 그렇게 정확한 발음으로 빠르게 말하는지 신기할 정도다. 개그맨이나 래퍼는 말의 천재라고 불러도 무방할 것이다.
나는 가끔 친구들에게 "말 좀 빨리 하고 죽는 게 소원이다."라고 한다. 내 말은 속도가 느리고 발음이 부정확하고 어조가 한결 같아서 다른 사람들에게 무시당하기 일쑤다. 내가 말할 때면 조금 듣다가 참지 못하고 끼어드는 친구들이 많고, 내 말을 듣는 사람들이 마지못해 듣고 있다는 느낌을 자주 받는다. 심지어 내 느린 말투를 흉내 내어 유머의 소재로 삼는 사람도 있었다.
그래서 어느 자리에서나 말을 적게 하려고 노력한다. 친구들과의 모임에서도 나는 주로 듣는 편이다. 자기들끼리 실컷 말하고 나서 나보고 말 좀 해보라고 한다. 그러면 나는, "내가 하고 싶은 말 너희들이 다 했잖아!"라고 한다.
머리 좋은 사람들은 말을 잘 한다고 하는데, 나는 머리가 나빠서 말을 못하나? 이건 아닌 것 같다. 말 잘하는 법을 배우지 못해서 그런가? 그런 것 같아서 요시다 유코가 쓴 ≪말 잘 하는 사람은 잡담부터 합니다≫란 책을 읽었다. 책에서는 능숙한 잡담 기술을 익히는 것만으로도 커리어에 다양한 가능성이 생겨나고 인간관계의 폭이 넓어진다고 한다.
잡담에 자신이 없는 사람은 파티나 세미나처럼 모르는 사람을 만나는 자리에서 내내 쭈뼛거리고 아무에게도 말을 걸지 못하다가 별 소득 없이 집에 돌아오곤 한다. 하지만 잡담 기술을 익히면 동석한 사람과 소소한 대화를 나눔으로써 작은 인연을 맺을 수 있다. 상대방이 내 이름과 내가 하는 일을 기억해준다면 그 후에 새로운 일을 도모할 기회가 생길 수도 있다고 한다.
문제는 나처럼 퇴직한 사람들에게는 파티나 세미나에 참석할 기회가 거의 없다는데 있다. 한 달에 한 번쯤 아는 사람들을 만나 식사를 하거나 술을 마시면서 뻔한 대화를 한다. 잡담으로 인간관계의 폭이 넓어지지 않는다.
잡담으로 시작하지 않고도 말을 잘 할 수 있는 법이 있을 것 같아서 기류 미노루가 쓴 ≪상대의 마음을 얻는 일류 대화법≫을 읽었다. 기류 미노루는 똑 같은 상황에서의 대화를 삼류, 이류, 일류로 구별하여 말하는 법을 제시하고 있다. 일류처럼 세련되게 말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머리로는 공감하지만 일류 대화법을 실전에 응용할 기회가 잘 오지 않았다.
‘랩이 든 노래를 불러 말을 빨리 해야지.’ 굳게 결심하고 아이콘(iKON)의 <사랑을 했다>를 녹음했다. 랩 부분은 구간 반복으로 20번쯤 들은 후에야 무슨 말인지 알 수 있었고, 다시 30번쯤 따라한 후에야 랩을 제대로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코로나19 대유행 이후로 노래방에 거의 가지 않게 되어서 랩이 든 노래도 할 수 있을 만큼 입이 재빠르다는 것을 자랑할 기회가 없어졌다.
대화법 책을 읽고, 노래를 익히면서 생각했다. 내가 ‘말’에 너무 신경 쓰는 것은 아닐까. 말 잘하기 위해 이렇게까지 해야 할까. ‘말 한 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는 속담도 있지만, ‘침묵은 금이다’라는 격언도 있지 않은가. 말 잘하는 ‘촉새’보다는 ‘말 없는 사나이’가 더 무게 있지 않을까. 세상을 살아가는 데는 ‘말’보다 ‘행동’이 먼저여야 하지 않을까. 자꾸 흔들린다. 이번 생에 말 잘하기는 글렀다.(2023.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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