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흔이 가까워지면서 내가 하는 행동과 기억력에 자신이 없을 때가 많다. 외출하면서 문을 잠그었는지, 안 잠그었는지 확실하지 않아 되돌아가서 다시 확인한다. 욕실의 수도꼭지를 제대로 잠그지 않거나, 전등불을 끄지 않고 나오는 경우도 있다. 무의식중에 하는 행동이라서 기억에 남지 않는다.
기억을 떠올리려 해도 전혀 기억나지 않는 행동이 있다. 술에 만취하여 블랙아웃된 상태에서 내가 어떻게 했는지 궁금하지만, 아무리 해도 알 수가 없다. 단기 기억이 저장되지 않기 때문이다. 알코올성 치매 예방을 위해서라도 술은 적당히 마셔야겠다.
치매의 첫 단계인지 명사를 기억하지 못할 때가 많다. 이름이 생각나지 않아서 ‘그거’라는 말을 많이 사용한다. 나이가 들면서 많은 명사를 잃어버렸다. 기억하려고 여러 번 애써도 아예 기억되지 않는 것도 있다.
분명히 알고 있었는데, 갑자기 이름이 생각나지 않는 경우가 있다. 산책을 하다가 길가에 노랗게 핀 꽃을 본다. 이런 꽃을 피우는 식물은 두 종류인데 하나는 씀바귀다. 다른 하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그 이름이 떠오르지 않는다. 몇 년 전 식물도감에서 ‘잎의 모양으로 구별한다’고 읽었는데 왜 생각나지 않을까? 30분간의 산책을 끝내고 인터넷 검색창에 ‘씀바귀와 비슷한 풀’이라고 쓴다. 고들빼기다.
뇌에 좋은 음식은 견과류, 아보카도, 브로콜리 등이다. 며칠이 지나 기억한 것을 점검하면 견과류는 생각나지만, 아보카도, 브로콜리는 생각나지 않는다. 오늘 점심때 음식점에서 먹은 찜은 무슨 찜이었지? 명태, 황태, 동태, 북어까지 생각이 나는데 한 가지 이름이 생각나지 않는다. 한참을 걸려서 겨우 ‘코다리’가 떠오른다.
외국 배우의 이름은 생각나는데 영화 제목이 떠오르지 않을 때도 있다. 로버트 드 니로, 알 파치노, 조 페시가 나오는 3시간 28분짜리 영화는? 후배와 대화할 때 생각나지 않아서 ‘그 영화’라고 이야기하다가 내가 본 영화 목록을 보고서야 ‘아이리시맨’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죽음 이후의 세계’를 다룬 영화 중에서 웹툰을 원작으로 만든 2부작 영화는 ‘신의 한 수’인가? 아니다. 신의 의지, 신의 뜻, 신의 실수 등 온갖 이름을 생각하다가 문득 ‘신과 함께’라는 제목이 떠오른다.
장기기억 창고에 들어있는 명사를 꺼내는 것은 가능해야 하는데, 그 기능도 점점 사라진다. 생각나다가 잊어버리고, 잊어버렸다가 다시 생각나기를 반복한다. 단순히 여러 번 반복 연습해서 기억한 것은 일정한 세월이 지나면 잊어버리기 쉽다.
기억창고에서 어렵게 꺼낸 단어는 다시는 잊어버리지 않도록 확실히 외워서 한 번 더 저장해야 한다. 씀바귀와 고들빼기를 함께 기억하기 위해서 숨바꼭질을 떠올리면서 ‘숨고 내빼기’라고 외워두면 ‘숨’으로 씀바귀를 떠올리고 ‘고 내빼기’라는 단어에서 ‘고들빼기’를 유추하기 쉽다. 아보카도와 브로콜리는 영어 알파벳 A와 B로 시작되는 이름이라고 생각해두면 기억날 것이다. ‘코다리’는 연상법으로 기억해야 한다. ‘명태의 코에 다리가 달렸다’고 상상해두면 ‘코다리’라는 이름이 떠오른다.
한 번 들으면 절대로 잊을 수 없는 이름이 있다. 검은등뻐꾸기는 울음소리가 특이해서 ‘홀딱벗고’라고 운다고 한다. 음정으로 표현하면 ‘라솔솔미’인데, ‘홀딱벗고새’라는 이름으로 더 많이 알려져 있다. 새들은 제 이름을 부르면서 운다. 사람들은 홀딱벗고새의 울음을 듣고 어떤 상상을 할까?(2023.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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