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에 수필대학을 수료하고, 심화 과정에서 6개월을 더 공부했다. 내가 회장인 심화반 수료생은 모두 4명이었다. 1년 후에 졸업여행을 다녀왔다. 올해 1월에 동해안에서 단합대회를 했고, 3월에는 지리산으로 여행 가기로 했다.
내가 경기도에서 기간제교사를 하게 된 것이 문제의 발단이었다. 채팅방에 2주에 한 번씩 대구에 내려간다 하고 3월 마지막 주 토요일과 4월 말 토요일 중 가능한 날 여행 가자고 제안하였다.
A는 언제나 OK라고 하였고, B는 4월에 가능하다고 했다. C는 아무런 말도 없다가 3월 중순이 지나서야 “4월에 해야겠네요.”라고 했다. 4월 말 오전 10시에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4월 초순에 B의 전화를 받았다. 여행 가기로 한 날에 다른 중요한 일이 있어서 곤란하다는 것이었다. 채팅방에 “4월 말에 지리산에 가기 힘든 분이 있습니다. 단기 방학 기간인 5월 3, 4, 5일 중에 날을 받읍시다.”라고 했다.
B는 어느 날이든지 좋다고 했다. A는 5월 4, 5, 6일은 언제나 가능하다고 했다. C는 A에게 5월 3일에 가면 안되느냐고 물었다. A와 B는 3일 저녁에 손해평가사 강의를 들어야 한다고 했다. C는 “사실 저는 3일이 가장 좋습니다. 4, 5일에는 어버이날 겸 가족 행사가 있을 것 같아서요.”라고 했다. 나는 C가 4, 5일에 가족 행사가 있는지 확실하지도 않은 상태에서 3일에 가자고 하는 것은 여행 가기 싫어서 하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A는 3일의 강의가 워낙 압축적이어서 하루도 빠지면 안 된다고 하면서 “그날 떠나서 6시 30분까지 대구에 도착하는 방법과 다른 좋은 날을 합심하여 다시 정하는 방법이 있습니다.”라고 했다.
C는 “6시 30분까지 대구 들어오는 방향으로 하고 더 놀고 싶으면 두 분은 강의 듣고, 나머지 두 사람은 강의실 근처에 있다가 강의 마친 후 합류해도 됩니다.”라고 했다.
B는 “연휴날은 교통편도 생각해야 해요. 아니면 가까운 곳으로 하셔도 됩니다.”라고 했다.
A는 “그럼 제가 3일 스케줄을 잘 짜보겠습니다.”라고 했다.
여행을 이틀 앞둔 5월 1일. A가 “대화가 좀 구체적으로 되어야 할 것 같네요. 제 생각에는 지리산 정령치까지 우리집에서 가는데 2시간 정도 걸리니까 9시 반쯤 우리집에서 출발해서 12시쯤 달궁식당에 도착해서 점심 먹고 정령치에서 쉬다가 내려오면 시간적으로는 맞는데 노는 시간보다 차타는 시간이 더 많아 부담스러울까 걱정이네요. 2안을 생각해봤는데 우포늪은 우리집에서 1시간 정도만 하면 갈 수 있으니까 3분 집까지 모시고 가도 충분하고 여유는 있어요. 화왕산도 있고, 근데 난 사실 계절 감각도 없고 어디가 좋을지 잘 모르겠어요. 좋은 의견 있으면 말씀 좀 해주세요. 참고로 운전은 어디를 가나 자신이 있습니다.”라고 했다.
B는 “아이고, 쉬는 날도 톡볼 시간이 없었네요. 너무 먼 거리는 부담되니 가까운 곳은 어떠세요. 모두 군위도 가볼 만한 곳이 많다는 데요.”라고 했다.
A는 “군위에 갈려면 화산산성 쪽이 좋겠는데 그럴려면 아양교역에서 모이는게 젤 좋습니다.”라고 B의 의견에 찬성했다.
지리산에서 우포늪으로, 다시 화산산성으로 여행지가 바뀌었다. 어쨌든 내가 결정을 내려야 했다. “10시에 아양교역에 모여서 화산산성 갑시다.”
여행 가기 하루 전. A가 “화산산성(전망대) - 군위호(일연공원) - 인각사 -(화본역)”이라고 갈 곳을 제시했다가 “사유원이라고 있는데 입장료가 평일 5만원이네요. 여기 좋다던데 여기 갈려면 딴 데는 다 생략해야 되요.”라고 했다.
B가 “사유원 좋아요.”라고 A에게 답했다.
A는 “화산산성가서 별로 볼 거 없어도 쉬엄쉬엄 쉬면서 얘기나 하면서 바쁘게 구경하지 말고 바람만 흡입하고 시간 되면 군위호 주변 인각사에 어슬렁 거려도 좋을 듯... 사유원도 좋고...”라고 하자,
B가 “어디든지 선생님들과 함께라면 좋아요. 많이 알아보셨네요.”라고 했다.
C가 “사유원 지금 더워서... 입장료 5만원이구요. 아예 그냥 화원동산 갈까요? 지하철 타고~~. 그러면 선생님들 점심에 한잔하셔도 되고 오실 때는 지하철 타고 수업 바로 가시고... 참고용입니다.”라고 했다가 다시,
“차 밀리면 선생님들 수업 늦어질까 봐 걱정이에요. 저는 아무 곳이나 괜찮습니다만 지금 사유원 너무 더워요.”라고 했다.
내일이 여행일인데 어디로 갈지 결정되지 않았다. 여행도 가고 강의도 듣겠다고 하는 A와 B, 저녁에 강의를 들어야 하는 사람이 있으니 가까운 화원동산으로 가자고 하는 C. 여행 장소도 제멋대로 말하고 있었다. 이렇게 자기 생각만 하는 사람들이라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심화반 모임은 더 이상 되지 않을 것 같았다.
2일 밤 10시 30분에 A가 자기 생각을 말했다. “이번에는 사정이 여의치 않으니, 담에 새 기분으로 삼빡한데로 가도록 해요.” A, B, C 모두 여행 가기 싫어하는 것이 분명해졌다.
5월 3일. B가 “좋은 아침입니다. 우리 오늘 모임이 어떻게 되지요? 모두 서로를 배려하려다 보니 조금 생각이 달라진 것 같습니다. 어떡할까요?”
내가 생각하기에는 서로 배려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생각을 굽히지 않으니 넉 달전 계획했던 일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은 것 같았다. 어쨌든 마무리를 해야 했다. “가지 않기로 했습니다. 6월 말에 봅시다.”
B는 “네, 그렇군요.”라고 하고,
C는 “꼭 가야하는 건 아니지만 오래 전에 정해진 날을 두 번이나 캔슬한다는 건 참 기분이 나쁘네요. 미리 말씀하셨다면 다른 약속들을 취소하진 않았겠죠. 정말 이랬다 저랬다 이건 아닌 것 같아요. 이 모임은 앞으로 안하는 걸로 하구요. 수필대학 정기모임만 하는 것으로 알고 있겠습니다.”라고 했다.
5월 4일. C가 채팅방을 나갔다. 우리는 왜 여행을 떠나지 못했을까? (2024.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