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37

유품 정리를 하면서

겨울이 지나가고 봄이 왔다. 봄맞이 대청소를 겸해서 겨울 동안 미루어오던 부모님 유품을 정리하기로 했다. 먼저 안방, 사랑방, 건넌방의 옷장이나 서랍장, 옷걸이, 플라스틱 바구니 등에 있는 부모님이 쓰시던 옷과 이불 등을 커다란 비닐포대에 넣었다. 부엌에서 사용하던 프라이팬, 그릇 등도 넣었다. 정리해야 할 옷과 이불, 그릇 등이 15포대나 되었다. 다음으로 부모님이 사용하시던 물건 중에서 우리가 계속 사용해야 할 물건과 버려야 할 물건을 정했다. 안방에 있는 옷장과 침대는 계속 사용하기로 했다. 거실의 소파, 탁자, 병풍, 사랑방의 자개 문갑, 건넌방의 옷장과 서랍장, 부엌의 식탁과 여러 종류의 밥상, 뒷 베란다의 쌀통과 사용하지 않던 싱크대 등은 버리기로 했다. 창고에 보관 중인 물건은 모두 다 버리..

수필 2022.04.25

두 가지 좌석

학교장이 되고부터 도시철도로 통근했다. 아양교역에서 1호선을 타고, 반월당에서 2호선으로 갈아탄 후 반고개역에서 내렸다. 노약자석이 비어있을 때는 자연스럽게 앉아서 갔다. 경로석이 아닌 노약자석이라고 되어 있고, 나는 약자에 속한다고 스스로 합리화했다. 좌석을 비워두는 것보다 이용하는 것이 더 낫다고도 생각했다. 반면에 아무리 복잡해도 앉지 않는 자리가 있다. 분홍색으로 꾸며진 임산부석이다. 그런데 청년이나 남학생들이 기차에 오르자마자 그 자리에 앉는 경우를 많이 본다. 기차 안에 임산부가 없을 때 자리를 비워두어야 하는지, 이용하는 것이 옳은지 분명하지는 않지만, 주차장에 마련된 장애인 전용 주차면을 생각하면 임산부석은 비워두는 것이 옳은 것 같다. 같은 기차에 마련된 자리인데 노약자석에는 앉아도 되고..

수필 2022.04.25

노화성 난청

포항 D초등학교에 4일간 기간제 강사로 근무하러 갔다. 첫째 날 퇴근 후에 강사로 임명되기 위해 필요한 채용신체검사를 하러 학교 부근 S기독병원에 갔다. 종합검진센터에서 키와 몸무게를 재고, 시력검사를 하고 청력검사를 하러 갔다. 간호사가 이어폰에서 ‘삐’ 소리가 들리는 쪽의 손을 들라고 했다. 오른쪽 손은 몇 번 들지 않고 왼쪽 손만 여러 번 들었다. 검사가 끝난 후에 오른쪽 귀가 많이 어두운 것 같다고 했다. 다음 날 검사결과지를 받으러 갔다. 왼쪽과 오른쪽 청력을 나타내는 데시벨에 차이가 많이 났다. 퇴근 후에 거실에서 TV를 보면서 청력 테스트를 했다. 음량을 1로 했을 때, 왼쪽 귀에는 잘 들렸지만, 오른쪽 귀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인터넷에서 찾아보니 청력이 감퇴되면 회복이 되지 않는..

수필 2022.04.10

수행의 시대

1986년에 김정빈의 선도 소설 ‘단’을 읽고 단전호흡을 하기로 결심했다. 시간이 있을 때마다 빈방에 혼자 앉아 단전호흡을 했다. 길을 걸을 때도 들숨보다 날숨을 길게 쉬기 위하여 노력했다. 기의 흐름을 느낄 수 없었다. 몇 년이 지나도 몸에는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 1993년 11월 24일, 교원대에서 만난 선생님과의 인연으로 ○○관을 찾아갔다. ○○관은 충북 보은군 마로면 구봉산이 보이는 마을에 자리잡고 있었다. 생기도인법, 기감체득법을 익혔다. 호흡천진법을 배울 때, 대사부가 나에게 반듯이 누워서 단전호흡을 해보라고 했다. 내가 숨 쉬는 것을 보더니 단전호흡이 아니고 복식호흡이라고 했다. 복식호흡만 잘해도 평생 건강하게 지낼 수 있다는 말에 위안을 삼았다. 밤 9시부터는 경문을 독송했다. 경문 독송..

수필 2022.04.10

벚꽃 구경

아내와 함께 ‘금호강 벚나무길’에 벚꽃 구경을 하러 갔다. 날씨가 화창하였다. 공항교 양쪽 잔디밭에 텐트를 치거나 의자를 가져다 놓고 앉아 있는 가족들이 보였다. 다리 밑 공간에 마련된 체육장에서 각종 체육 기구를 이용하여 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4개의 평상 중 두 곳의 평상에 노인들이 가득하였다. 한쪽 평상에서는 화투를 치고, 다른 평상에서는 바둑을 두고 있었다. 평상에 앉지 못한 노인들은 잔디밭에서 술을 마시고 있었다. 어림잡아 30명이 넘었다. 금호강 산책로에는 개를 데리고 산책하거나 친구들과 이야기하면서 걷거나 가족 단위로 걷는 사람들이 많았다. 산책로와 분리된 자전거길에는 자전거 동호인들이 이따금씩 무리를 지어 지나가고 있었다. 이룸고등학교와 성보학교를 지나서 아양교 기찻길까지 걸었다. ..

수필 2022.04.03

어머니의 꿈

어머니는 18살에 결혼하셨다. 나를 낳기 전에 딸 셋을 낳았다. 둘째 누나만 살아남았다. 어머니는 내가 태어나기 전에 꿈을 꾸셨다. 깊고 푸른 물속에서 우렁이 세 마리를 줍는 꿈이었다. 당신은 아들 삼형제를 낳을 꿈이라고 생각했는데, 세 번째는 딸이었다. 자라면서 여러 번 듣게 된 어머니의 꿈은 자식들이 농사를 짓지 않는 것이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담임 선생님이 자기 꿈이 무엇인지 정해오라고 하셨다. 집에 와서 어머니께 “엄마, 나는 커서 무엇이 될까?” 물어보았다. 어머니는 “군대에 가서 대장을 해야지”라고 하셨다. 학교를 다니지 못한 어머니는 세상의 많은 직업을 알지 못했다. 그 당시 작은외삼촌이 해군에 계셨기 때문에 대장이 되라고 하신 것 같았다. 초등학교 때 나의 꿈은 ‘소설가’였다. 중학교..

수필 2022.03.27

J씨의 직업

내가 다니는 목욕탕의 J씨는 네 가지 직업에 종사하고 있다. 우선 건물 3층에 위치한 남탕 관리를 한다(회사원). 손님이 제시하는 목욕권을 수거하고, 목욕에 필요한 물품을 판매한다. 때수건, 비누, 치약, 칫솔과 목욕 후에 찾는 우유, 음료수 등이다. 욕조에 더운물을 공급하고 욕탕 안팎을 청소하고, 목욕탕에 비치된 목욕용품과 재활용 쓰레기통, 수건 수거함 등도 관리한다. 두 번째 직업은 이용소 사장이다(자영업). 관리대 옆에 따로 이발하는 공간이 있다. 벽면 위쪽에 이용사면허증을 게시하였고, 이용 도구를 갖추었다. 일반 이용소와 다른 것은 의자가 하나뿐이라는 점이다. 세 번째 직업은 세신사, 즉 때밀이다(보건위생직). 때를 미는 공간에서 목욕객의 때를 밀어주고, 어깨 마사지, 전신 마시지를 한다. 초등학..

수필 2022.03.27

붕우무신(朋友無信)

초등학교에 다닐 때부터 친구의 소중함과 우정의 중요성에 대하여 많이 배웠다. 죽마고우(竹馬故友), 관포지교(管鮑之交) 등의 사자성어도 있지만 가장 많이 들은 말은 ‘붕우유신(朋友有信)’이었다. 친구 사이에는 믿음이 있어야 한다. 나는 시골에서 4학년까지 다니다가 5학년 때 대구로 전학했다. 나이 들어 동기회를 찾게 되었을 때, 두 군데 초등학교에서 다 회원으로 받아주었다. 검정고시 출신으로 고등학교 친구가 없는 내게 초등학교 동기들은 무척 소중한 친구들이었다. 2022년 1월 19일에 내가 졸업한 초등학교 친구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곤충표본을 40개 정도 가지고 있는데 모교에 기증할 수 있는지 알아봐달라는 전화였다. 그 친구가 곤충표본을 촬영한 동영상을 카톡으로 보냈는데, 내가 처음 보는 곤충들이 많았다..

수필 2022.01.26

어머니

1929년 11월 12일(음력)에 태어나신 어머니. 18살에 동갑인 아버지와 혼인하여 2남 2녀를 낳아 키우시고, 4남매 모두 대학 이상 졸업을 시켰다. 어머니 평생 소원은 자식들이 공부를 많이 해서 농사를 짓지 않는 것이었다. 어머니는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가난한 집안에 시집오셨다. 자식들을 공부시키기 위해서 어머니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버지와 함께 열심히 농사를 지으시고 물건을 아껴 써서 절약하는 길 밖에 없었다. 내가 어릴 때 어머니는 호롱불 밑에서 아버지와 우리 형제자매의 헤어진 옷과 구멍 난 양말 등을 기우시고, 내의를 뒤져 이와 서캐를 잡는 모습이 기억난다. 화장품도 아껴서 바르고, 작은 플라스틱 통에 든 약을 바를 때도 얇게 펴서 발랐다. 어머니는 식사 시간에 항상 아버지와 자식들이 먼저 먹..

수필 2020.09.19

장서의 즐거움

장서의 즐거움 일요일이나 공휴일은 책을 읽거나 모아놓은 책들을 둘러보면서 시간을 보낸다. 책은 4000권이 넘고, 비디오는 800개가 넘는다. 소설, 시, 수필 등 분야별로 엑셀 파일에 '도서목록', '비디오 목록'이란 이름으로 정리하고 있다. 모아놓은 책 중에서 읽은 책은 극히 일부분이다. 지금 있는 책만 해도 평생 읽어도 다 못 읽을 것이다. 요즘엔 책을 많이 읽지 않는 편이다. 나이가 들면서 안경을 쓰지 않고는 글씨를 잘 볼 수 없게 된 것도 그 이유 중의 하나이다. 언제부터 책을 모으기 시작했을까? 누구나 그렇듯이 처음에는 책을 읽기만 하였다. 내가 초등학생일 때, 작은아버지는 방학 때마다 동화책을 10여권씩 가지고 우리 집에 오셨다. ‘아라비안나이트’, ‘보물섬’,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

수필 2013.05.12